2018.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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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치하, 여성 98명 총검에 의해 집단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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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호 탄생!
19.04.13 상해임정수립.. 대한민국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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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광복!
광복군 태운 C-47수송기, 여의도활주로 착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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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경교장서 안두희 총격 피습으로 서거
1922년 3월5일

일제 치하, 여성 98명 총검에 의해 집단 처형



세 발짝 떨어져!

일본군이 발포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희생자들은 모두 근거 없는 법률위반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남자들이다.
총살 집행자들이 촘촘히 서 있는 이유는 그들이 아주 형편없는 실력의 사수들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오른쪽 하단 구석에 희생자를 위한 것으로 보이는 몇 개의 관이 있다.

군사 재판 희생자의 목에 사형 표지를 두르고 있다.

 


일제의 폭압, 산업 노예 운명에 처한 사람들
도로, 학교, 교역, 법정- 모두 도쿄의 군국자들에 의해 지배당하다.
돌아온 미국인 사업가가 조선의 교훈을 새기고 황색 압제자를 주의하도록 미국에 경고하다.


일본 깡패들, 증오심에 무차별 약탈
대한제국 정부에 대한 철권통치를 휘두르며, 미카도(일왕)의 군인들이 강철 군홧발로 작은 나라를 짓밟다-특히 기독교인들은 고난을 강요받다-교인들은 살해당하고, 소녀들은 고문을 당하고 죽음보다 더 비참한 운명에 처하다.


 

군국주의적 성취를 바탕으로 일본이 오랫동안 준비한 영토 확장을 위한
군사 작전으로 인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조선의 소극적이지만 강력한 투쟁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주 미국인 사업가 로버트 엘 워드는 3년간의 극동 체류를 마치고 돌아와, 미국인들에 대한 일본의 호전성과
가까운 장래에 벌어질 수도 있는 일본의 비밀 전쟁 준비에 관해 상세히 언급했다.
그는 이 두 번째 연재 기사에서 최근 미국인 선교사들과 조선 애국자들이 대담하게 폭로한, 일본이 조선을 억압하며 저지른 잔혹한 행위에 대한 놀랄만한 폭로를 이어간다. 그는 자신이 목격한 것을 토대로 글을 썼다.

로버트 엘 워드
내가 말하려고 하는 내용은 섬뜩한 이야기다.
그 몸서리처지는 상황들을 모두 상세히 이야기하려면 여러 권의 책을 써도 모자랄 것이다. 국제적으로 독자들은 기사의 헤드라인에서 조선에 행해지는 일본의 압제를 접하고 있다. 나는 그러한 압제들을 수없이 목격했다. 나는 그런 충격적인 기사 헤드라인 이면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미국인들에게 말할 수 있다.

나의 동기 두 가지다.
첫째는 내가 목격한 고통들에 여러분의 주의를 강력하게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두 번째가 더 중요한데, 이는 일본에 대항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경고를 미국에 확실히 인식시키기 위함이다.

일본이 중국과 만주, 조선과 시베리아에서 지금 무엇을 하든 그것은 일본이 미국에 선전포고할 그날을 준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가능성에 대비해 우리가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극동에서 일어난 일들이 미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독자들은 조선의 소녀들이 발가벗겨져 거리에서 매질당하고 끌려 다니고, 심지어 더 극악무도한 치욕을 당하며 고통스러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기사로 읽었다. 또 가족들이 처형되고, 애국자들이 회합에서 몽둥이로 맞아 죽고, 미국인 선교사들에게까지 행해진 잔혹한 짓에 대해 읽었다.
그 이야기들은 사실이다. 그야말로 사실이다.

 

조선인들을 근절시키다
몇 년 전만 해도 일본인은 조선의 수도 서울에서는 한 줌이었고, 국제적으로도 그랬다.
중국인 못지않게 고요함을 사랑하고, 평화로운 민족인 조선인들은 농업과 어업에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오늘날 점진적으로 조선인들이 근절되고 있다. 이는 일본의 계획에 의한 것으로, 지금은 서울에 있는 일본인들이 조선인들보다 훨씬 많다.
또 가장 비옥한 땅들은 강압에 의해 일본인들의 소유가 되었다. 조선어는 공립학교에서 폐기됐다. 아이들은 일본어를 배우고 말해야 한다. 조선 학생들에게 고등 교육은 허용되지 않는다. 모든 조선인은 일장기에 경례를 하고 일왕의 위폐에 참배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모든 기독교 활동은 끊임없이 지독한 박해를 받고 있다. 극동의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가장 소극적이고, 평화로운 나라인 ‘은자의 왕국’ 조선이 일본에 어떤 식으로 예속되었는지 배경을 설명하면 조선의 참상에 대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러일 전쟁으로 “대한제국의 독립과 영토 보전을 확고히 보장하려는” 일본의 엄중한 속내가 세계 모든 나라에 타전됐다.

 

1904년의 조약
1904년 8월에 체결된 조약으로 일본 화폐가 법정 통화가 됐고, 2만 명이던 조선군이 1천명으로 줄었으며, 조선의 모든 수비대는 폐지됐다.
토지수용권을 행사하도록 일본 관리가 ‘부통감’으로 임명됐다. 1907년 11월 이토 후작이 서울에 도착해 조선의 내정 통제권을 일본에 부여하고, 조선의 독립을 박탈하도록 하는 형태의 조약을 요구했다. 황제와 내각은 아연실색하며 거절했다. 이토 후작은 재차 강제로 황제 알현을 시도했으나 헛수고였다. 궁 밖에서는 일본 군대가 만일의 경우, 공격 작전까지도 감행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군사 기동훈련으로 세를 과시하고 있었다. 이런 과시는 효과가 없지 않았다. 내각은 일본군이 1895년 비슷한 시위를 벌인 후 궁에 강제로 진입해 황후를 시해했던 그 끔찍한 밤을 잊을 수 없었다. 과거 이 같은 짓을 했다면, 일본이 이를 되풀이 하는데 왜 주저하겠는가?

 

무단통치
일본 군대는 총검을 앞세워 궁 안으로 들어와 황제의 숙소 아래 정렬했다.
이런 가운데 후작은 다시 황제에게 조선의 독립을 박탈하도록 하는 형태의 조약을 요구했다. 황제는 또다시 굴복을 거부했다. 그러나 결국 일본의 집요한 요구는 일부 대신들에게 그 효과를 발휘했고, 조약은 강제로 체결되었다.
서울의 한 신문인 <황성신문>이 당시 사건의 진상을 보도했다. 신문사는 탄압 받았고, 편집장은 투옥됐다. <황성신문>은 기사 말미에 이렇게 실었다.

 

“우리 더 이상 이렇게 살아 무엇하리?
백성은 노예가 되었고, 4천년을 이어온 민족혼은 하루밤새 말살되었구나!”

 

조약에 따라 일본 관리들은 “대한제국의 대외관계”를 장악, “일본의 외교 공사와 영사가 조선의 대외관계를 통제하기”로 “합의”되었다. 조선인들은 “일본의 중재 없이는 그 어떤 외교적 성격의 조약이나 협정도 교섭하지 않기”로 맹세했다. “일본 정부는 자국의 대표자로서 통감을 임명하고, 조선의 모든 개항장에 주재원을 임명할 권리를 갖는다”고 “합의” 되었다.

 

일본의 압제 치하
황제는 무기력한 황태자에게 양위하였고, 황태자는 일본인들의 볼모가 되었다.
일본 정부는 그 후 곧바로 최종적인 정복 “조약”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한제국 정부에 의해 제정되는 모든 법률과 시행되는 모든 행정 조치는 통감의 사전 동의를 받는다.”

“대한제국 정부는 행정 개혁을 시행함에 있어 통감의 지도를 따른다.”

“대한제국 정부의 고위 관리 임명과 해임은 통감의 뜻에 따른다.”

“대한제국 정부는 통감이 추천하는 일본인은 누구든 대한제국의 관직에 임명한다.”

“대한제국 정부는 통감의 동의 없이 외국인과 접촉하지 않는다.”

그 후, 나머지는 수월했다.
기업 및 상업 통제와 정치, 종교, 교육 문제에 있어 조선인의 목소리를 완전히 배제한 절대적 정부 운영으로
1920년 8월29일 대한제국은 일본에 병합되었고, 이 사건은 국제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애국자들 도쿄에 저항하다
애국지사들의 회합을 와해시키기 위한 일본의 극단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들은 1919년3월1일 일제 치하의 2천만 동포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선언서 조항 중 일부가 반복된다.

 

“자유에 대한 갈망은 근절 또는 억제, 재갈을 물리거나 억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수년 간 외세의 압제에 의해 온갖 고통을 겪고, 생존권을 박탈 당하고, 사상의 자유를 제한받고, 삶의 존엄성을 훼손당했다. 과오를 바로잡고자 할진대, 현재의 고통에서 해방되고자 할진대, 미래의 압제에서 벗어나고자 할진대, 사상의 자유를 얻고자 할진대,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유산에서 우리 자손들을 해방시키고자 할진대, 이에 가장 먼저 할 일은 독립이다.”

 

이제까지 내 기사의 내용은 일반적인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구체적으로 기술할 것이다.
먼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상공업 지배에 관한 것이다. 지방을 비롯해 조선의 모든 국가적 기능은 일본식이다. 정부 직위 중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조선어는 사용되지 않는다. 경찰은 일본식이다. 군대도 많으며 일본식이다. 지명도 일본식이다.
사방에 세워지는 방어시설과 수비대도 일본식이다. 조선술(shipbuilding)도 일본식, 상공업도 마찬가지다.

 

몰수 방법
일본은 엄청난 속도로 조선을 식민지화 하고 있다. 이는 상공업에 대한 통제의 필요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일본인이 특정 업소를 원한다고 치자. 그는 조선인 소유주에게 가격을 제시한다. 하지만 조선인은 이를 거절한다.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이 일을 법정으로 끌고 가고, 그가 지지를 받는다.
일본인이 특정 농장을 원한다고 치자. 그는 동일한 수법으로 농장을 거저 얻는다. 일본인들이 가장 좋은 토지와 어장, 철도와 광산을 소유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가졌다. 국가 1인당 재원에 대한 공무상 통제로 인해 조선인이 일본인 상인과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선인들은 산업 노예로 전락했다.

종교에 대한 통제도 철저하게 실행되고 있다. 어느 종파의 목사든 일본으로부터 면허를 받지 않으면 설교가 금지된다. 5명이 넘는 종교 집회는 허가 없이 열 수 없다. 일본 경찰은 모든 교인 등록 명부를 사본으로 보관한다. 그들은 교회 일과 선교사업에 참여하는 젊은 남녀들을 비밀리에 해코지 한다.
신학생들은 일본 면허를 딴 후에 성직자가 될 수 있다. 학생이 애국자일 경우에는 이마저도 종종 거부된다.
일본인들은 민주적이고 자유를 설파하는 기독교의 교리가 두려워 조선의 기독교에 특히 공격적이다. 뉴스는 검열된다. 일본인들에 의해 사실이 아닌 허위 뉴스가 보도된다. 그럼에도 조선에서는 일제의 폭압에 관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독자들은 서울에서 약 64km 떨어진 제암리 소재의 한 교회 건물에서 35명의 조선인들이 일본군에 의해 어떻게 총살되고 총검에 찔려 죽었는지에 관한 2~3년 전 기사를 기억할 것이다. 미국인과 영국인 영사관 직원들, 선교사들이 여러분들에게 이 같은 내용을 확인해 줄 것이다. 일본인들은 그 모임이 독립을 위한 회합이었다고 설명했다. 3개의 마을에서 3개의 교회가 거의 동시에 불태워졌다. 제암리 대학살을 실행하기 위해 일본군은 모든 남성 교인들을 교회 안으로 들어가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그들은 총검을 장전, 발포했다. 한 조선인이 자신이 겪은 일제의 무자비한 학대 사실을 미국인 선교사에게 알렸다. 그 후 그는 구타당했고 감옥에 투옥, 독방에 감금됐다. 그들은 그를 프레스 안에 넣고 억지로 직립 자세로 앉게 하고는 뒤에 있는 바퀴가 회전할 때 프레스의 양 쪽이 수축되도록 했다. 그들은 그의 오른손 중지에 줄을 묶고 그 줄의 끝을 천장에 있는 판자 너머로 보내서 그 남성이 손가락으로만 매달릴 때까지 줄을 잡아당겼다.
또 다시, (독립)포고문을 낭독할 것이라는 구실로 일본인들은 40여명의 남성들에게 한 교회로 들어갈 것을 명령했다. 그들에게 일제히 사격이 가해졌고 마루는 시신으로 뒤덮였다. 두 명의 여성이 그 건물에 접근했다가 총검에 찔려 죽었다. 시신들에 석유가 뿌려졌고 교회는 불태워졌다.

조선 독립을 위한 비밀 회합이 일본인들에 의해 발각될 때마다 참여자들은 죽어갔다. 나는 수차례 이런 애국자들이 거리에서 질질 끌려가며, 총검에 찔리고 감옥에 투옥되는 것을 보았다. 서울과 그 밖의 지역에서도 일본인들이 소녀들을 총검으로 겨누고 강제로 끌고 가는 것을 보았다. 소녀들은 일본인 장교들 앞에서 발가벗도록 강요받았다. 그들은 14세, 15세 혹은 더 어려보이는 어린 아이들이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치욕을 당했다. 그 후 그들은 고문을 당했고 굶어 죽거나 군인들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군인들에게 넘겨졌다. 수많은 소녀들이 엄지손가락이 묶인 채 강제로 거리를 지나 끔찍한 최후를 맞으러 갔다.

 

희생자들을 산 채로 묻다
남자들은 자신의 집으로 끌려갔고 집은 불탔다. 남자들은 애국지사로 의심된다는 이유로 처형당했고 그동안 그들의 가족들은 방치됐다. 나는 처형 장면을 목격했다. 일본군이 조선인들의 눈을 가리고 세 발짝 이내로 걸어가 총을 쏘는 것을 지켜봤다. 희생자 중 한 명이 죽도록 방치된 후에 몸부림치는 것을 보았다. 일본인들은 돌아와 그가 살아 있음을 확인했다. 그들이 또 다시 총을 쐈을까? 아니다. 그건 그들에게 너무 귀찮은 일일 것이다.

그들은 그를 산채로 묻었다. 이는 전해들은 것이 아니다. 나는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물론 처형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다. 이 기사에 함께 인쇄된 사진들은 그날 내가 찍은 것이다. 셀 수도 없는 수천명의 사람들이 독립을 꾀했다는 이유로 투옥됐다. 그들은 봉기를 일으킬 수 없다. 총기 소지가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리지어 모이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무리지어 길거리에 서 있을 수도 없다. 날이 저문 후에는 집에 들어가야만 했다. 집을 불태우는 일이 이따금 일어나고, 한 번에 수십 명을 죽이는 일도 드물지 않다. 태형은 일상적인 벌이다. 800명을 수용하는 감옥 하나에 2100명의 정치범이 수용되었다. 선량한 조선인들이 감옥에 투옥됐다.

 

86명이 한꺼번에 처형당하다
13개월 전 조선인 336명이 한꺼번에 즉결 처형됐다. 독일인들이 벨기에에서 저지른 만행도 이 대량학살만큼 끔찍하지는 않았다. 그 336명 중에는 남편들과 아들들의 행방을 밝히지 못한 것 외에 그 어떤 죄도 없는 86명의 아내들과 12명의 어머니들도 포함됐다.
2년 전 일본인들은 조선에 거주하는 자국민에게 미국이 조선 독립 요구의 배후라는 보고서를 뿌렸다. 이 허위 보고서로 인해 모든 미국인들에 대한 반대 시위가 촉발됐다. 미국인으로 오해 받은 영국인 3명이 서울에서 일본인 무리에게 시달렸다.
조선의 팅양(Ting Yang)에서 신학생들이 체포돼 발가벗겨진 채로 거친 나무 십자가에 묶여 그것을 짊어지고 강제로 거리를 걷게 한 일이 있었다. 그들은 기독교인이었다. 일본군은 그들을 총검으로 찌르며, 그들의 예수가 십자가를 진 것처럼 그들도 그런 특권이 있다고 신나서 소리쳤다.
사실상 모든 한국어 간행물은 탄압 받는다. 학교의 모든 간행물은 일본어로 되어 있다. 조선의 역사 교육은 금지 되어 있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교사들뿐이다.

 

조작된 역사
교과서는 일본 정부에서 출판한다. 교과서에서 개인주의 문화나 유럽의 독립 투쟁을 연상시킬 수 있는 유럽의 역사와 문학 관련 주제는 배제된다. 조선인 학생들은 더 나은 교육을 받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실은 어떤 목적으로든 조선을 떠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외국으로 나가는 조선인은 비밀리에 나가는 것이며 발각되면 죽을 위험에 처한다. 학생들은 일요일에 정부를 위한 강제 노역에 동원돼 교회에 가지 못한다. 기독교인들은 일요일에 강제 노역을 하고, 이 때문에 안식일을 어길 수밖에 없다. 형사들이 모든 교회의 예배를 감시한다. 애국주의 성향의 목사들은 체포된다.
무단 통치는 계속되고 있다. 누그러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조선인들은 소극적이고 가망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가망 없는 상태가 유지될 지의 여부는 외부 세계에 달려있다. 그러나 조선의 참상이 미국인들에게 주는 큰 교훈은 조선의 고통 보다는 미국의 위험에 있다. 일본은 침략한 곳이 어느 곳이든 혼돈, 비극, 압제를 흩뿌리고 다녔다. 지금까지 일본의 정복은 굉장했지만 그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은 더 큰 사냥감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노리는 큰 먹잇감이 어딘지는 짐작하고 말고 할 필요도 없다.

 

(다음 주에 워드 씨는 일본이 시베리아 침략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