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학교 시리즈 강연 ① – 참여후기

6월 14일 진행된 100년 학교 시리즈 강연 ①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을 듣고 많은 시민분들께서 참여후기를 보내주셨습니다.
이중 다섯분의 후기를 소개합니다. 더불어 우편과 메일로 참여후기를 보내주신 많은 시민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김찬우 시민님

대한민국 건국, 3∙1 ‘혁명’ 100주년 강연을 들으러 시청으로 향하며 어떤 내용의 강연을 들을까 생각해 보았다.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 지금부터 시민위원들이 해야 할 일들 정도에 대한 희망찬 강연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강연의 내용은 나의 예상과는 아주 달랐다.

대한민국 건국, 3∙1 ‘혁명’ 100주년 강연을 들으며 가장 마음에 와 닿던 대목은 ‘우리나라는 친일파를 청산한 적이 없다. 우리는 독립운동을 청산하고 있다!’ 이었다. 독립이 된지 아직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지금, 우리나라 학생들을 위한 교과서에는 프랑스 혁명의 노래는 소개될지언정 독립운동가들의 혼이 담긴 노래 한편은 실리지 못하였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한 교과서에는 친일파의 소설은 쓰여있지만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쓰던 이들의 한 어린 글 한편은 읽히지 못하였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어갈 청소년들을 위한 교과서에는 세계의 명화들이 실려있지만 그들에게 독립을 위해 자신과 자신의 가족까지 바친 우당 이회영 선생의 묵란화 하나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친일파의 책으로 교육받는 나라, 일본의 통치에서 벗어나 친일파의 통치를 받는 나라, 정말 원통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이 강연을 들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애국심은 물론 일제와 친일파에 대한 반감이 샘솟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시간의 강연이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참가한 시민위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시민위원들을 각성시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김홍렬 시민님

1919년 3월 1일. 전국 곳곳에서 200만이 넘는 국민들이 일제의 식민지배 총칼에 맞서 죽을 각오를 하고 국권회복을 위해 목청 높여 독립의 열망을 토했던 그날의 함성이 지금 우리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기억되고 있는 것일까?

생일, 결혼기념일, 회갑, 칠순 등 가족과 지인들의 기념일은 챙기고 있지만 정작 우리 대한민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목숨까지 던졌던 수많은 국민들의 용기와 숭고한 희생이 서려 있는 삼일절을 나는 얼마나 소중히 챙기고 있었던가? 해마다 삼일절을 비롯한 주요 국경일에는 이른 아침에 아파트 베란다에 태극기를 게양했다. 20층 아파트에 겨우 서너 집 정도 태극기가 게양되는 것을 보면서 이 정도 작은 동참하는 것 만으로 나름 내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고, 동참하지 않은 이웃들을 탓했던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번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 강연을 듣고 나서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지만 정작 학교에서도, 방송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역사적 사실들을 강연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의 현실은 친일청산이 아니라 독립운동의 청산이었다는 참담한 현실을 토해내는 강연자의 발언에 가슴 속 깊숙이 탄식이 흘러나왔다. 부인할 수 없는 이런 현실 속에서 광복 70년이 훌쩍 지나간 것에 대해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나 자신의 무관심을 먼저 반성하게 되었다. 먹고 살기에 급급했고, 인생을 즐기는 것에 관심을 두고 살아왔을 뿐, 우리나라가 이렇게 자유를 누리고 발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는지는 까맣게 잊고 살아온 것에 대한 죄송함이 가슴을 친다.

3·1운동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온 국민이 동참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난 항일독립혁명이다. 영국의 명예혁명이나 프랑스 시민혁명보다도 국가적인 동참의 규모나 그 의의를 생각해 본다면 이제는 3·1운동이 아닌 3·1혁명으로 명명해야 한다는 강연내용에 많은 공감이 되었다.

2년 후면 3·1운동 100주년이 되는데, 우리가 소홀히 잊고 살아온 3·1운동의 의의와 소중한 역사적 사실들을 나부터 알고자 노력하고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2년을 잘 준비해서 역사적인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 을 온 국민이 자랑스럽게 마음에 품고 후손 대대로 기억할 수 있도록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남복희 시민님

2003년 겨울, 중국의 춘절연휴의 상해.

춘절연휴를 즐기려는 중국의 엄청난 인파에 놀라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하였던 2003년 겨울이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아있어서 늘 아쉬웠다.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상해는 늘 부랴부랴 다녀오는 도시가 되었고, 단 한번 보았던 상해임시정부 청사를 다시 방문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 기억속의 그 곳은 좁은 골목길 안쪽의 오른쪽에 자리 잡은 3층의 허름한 건물이었고 좁고 어둡고 무거운 장소다.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누렇게 변색된 태극기와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던 분들의 사진을 보며 한 바퀴 돌았었다. 사진촬영도 금지되었던 기억이지만 좁은 골목과 임시정부 청사의 외부모습을 찍었던 카메라는 아쉽게도 춘절을 기념하는 어마어마한 폭죽 구경을 하다가 소매치기 당했다. 카메라가 아까운 것 보다 그 때 찍었던 사진들이 너무나 아깝고 아쉬웠다.

임시정부 요원들은 3·1독립운동 이후 국내의 탄압을 피해서 상해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전 세계에 대한민국이 독립국임을 선언하고, 독립을 위하여 외교적 노력과 무력 독립투쟁까지 펼쳤었고 그 투쟁의 중심이 되었던 임시정부가 상해 구도심의 초라한 골목길 한 귀퉁이에 있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 상해에 사는 한국인의 설명에 의하면 고층빌딩 속의 번화한 상해속의 임시정부청사가 있는 지역도 재개발될 것이어서 임시정부 청사의 존립도 걱정스럽다 했었는데 지금은 어떤 모습이 되었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그렇게 조금씩 기억하다가 잊어버리던 일들이 반복되면서 시간은 흐르고 나는 조금씩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잊고 지내고 있다. 그렇게 십년도 넘는 시간들은 무심하게 지나가 버렸다.

 

2017년 봄. 서울의 시민위원310 모집공고.

우연히 서울시청 홈페이지에서 시민위원310 모집공고를 보게 되었고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일들에 대한 갈증이 갑자기 더 심해지고 그 갈증을 해소하고자 시민위원 지원서를 냈고 난 지금 예비시민위원310 이 되어서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 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몰랐었고 그냥 모르는 채로 대충대충 쉽게 살아가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던 내 모습을 뒤돌아 볼 정도로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그렇게 몰랐던 것에 대한 스스로의 민망함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쉬지 않고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혼자는 쉽지 않다. 혼자라는 편리함으로 쉽게 중단하게 될 것 같아서 누군가와 함께 하는 기회를 찾게 된 것 같다. 가끔 읽었던 책 몇 권, 뉴스에 오르내리던 여러 가지 기사들, 일본과 관련된 다양한 감정들과 자료들은 내 머릿속에서 흩어진 퍼즐처럼 마음대로 흔들리고 제멋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렇게 흩어진 퍼즐들을 하나씩 제자리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은 시민위원 310 첫모임에 참석하고 난 후 더 강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퍼즐은 집중해서 순서대로 맞추어 나가야 완성할 수 있는 것처럼 시민위원 310에 집중해서 순서대로 참석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머릿속에 있는 퍼즐들을 잘 맞추기 위해서 일단은 내가 모르는 것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인 특강시리즈인 100년 학교를 열심히 다녀야 할 것이다. 하고 있는 일들 중에서 100년 학교의 우선순위를 앞쪽으로 정해놓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2017년 초 여름. 3·1운동 100, 대한민국 100년 특강.

6월 14일,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저녁에 시청 대회의실에서 진행 된 100년 학교 시리즈 첫 강연의 서해성 총감독님의 화두에 소름이 돋았다.

친일이 청산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이 청산되었다.’

이렇게 관점을 바꾸어서 화두를 던지니 여러 가지 질문과 의문에 대한 답들이 동시에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독립군가의 실종에 대한 의문과 이인직의“혈의 누”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도 해결되는 것 같았다. 이인직과 이완용의 관계, 손병희 선생께서 태화관을 선택하게 된 이유와 통합임시정부가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들, 이러한 각각의 이야기들과 의미들이 각각의 조각으로 떨어져 있던 퍼즐들을 3·1운동 100년 기념사업 속에서 일상화 역사와 문화의 틀 속에서 각각의 자리를 잘 찾아가는 완성된 퍼즐로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내가 완성하려고 하는 퍼즐이 흔들리지 않고 어설프지 않게 잘 자리잡기 위한 첫 걸음으로서의 서해성 감독님의 열정과 열강으로 진행 된 첫 특강은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시간이었다. 역사는 사건의 현실과 기억의 현실사이에 존재한다고 하시면서 기억도 계속 밥을 주어야 한다고 하신 서감독님의 표현에 적극 공감하면서 내 기억에 열심히 밥을 주기로 하였다. 내 지식과 내 기억은 서해성 감독님의 첫 특강을 듣고 나서 더 많은 공부를 할 준비를 하였다. 다음 만남인 6월 26일의 백범일지 낭독시간이 너무나 기다려지면서 백범일지를 혼자서 소리내어 읽어 내려간다. 아주 천천히, 또박또박 소리내어 읽다가 백범 선생 묘역에서 또 다른 역사를 만날 것이다.

2017년에 내가 한 일 중에서 시민위원 310 인이 되었음이 가장 의미있고 반갑고 감사한 일이 될 것 같다. 다음 만남이 기다려지는 모임은 이미 축복받은 모임이라는 생각이 들고 난 그 축복받은 모임에 중독되어 있다. 아주 심하게~~~

 



이미르 시민님

사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너무나 거북스러워 한다. 도저히 그 이야기를 들으면 생기는 분노와 울분, 우울감을 어디에도 풀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비극적 사건들은 모두 과거 해방으로부터 잘못 끼워진 하나의 단추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자탄이 불발이 되고, 일본이 항복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해서 8월 18일 국내진공작전이 수행이 되고 대한민국이 자력으로 국토를 수복하고, 미군이 일본 본토에서 몰락작전을 수행 완료되어 세계 2차 세계대전이 종료가 되었다면.

물론 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우리 앞에 산적한 문제 현안들을 해결해야 한다. 그 시발점이 바로 잘못 끼워진 단추를 다시 정상적으로 돌리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미처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역사 앞에서 오히려 청산을 당해버린 독립운동가들의 비극적인 역사에서부터 비롯된다고 서해성 총감독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아니, 말이라고 하기 보다는 온몸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때로는 자신이 알고있는 사실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생각을 어떠한 필터도 없이 과감하게 토해내는 그의 모습에서 경이롭기까지 함을 느꼈다.

그의 해박한 지식 앞에서 내가 미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한 분노와 내가 알고있었던 사실들을 반추하며 다시금 입술을 깨물게 되었다. 대동단결선언 속에서 주장한 융희황제의 선양은 일본에 대한 선양이 아닌 바로 당시 조선인들에게 로의 선양이라는 것. 이를 통해 제국에서 공화국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너무나도 명쾌한 논리속에서 선인들의 지적능력에 대해 경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길었던 그 시절의 기미독립혁명은 전 국민의 1할 이상이 참가한 세계의 유례가 없는 비폭력 혁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의 지식인들은 황제의 서거를 추모함과 동시에 제국의 끝을 선언하였으며, 지식인들의 선언과 함께 독립의 열망을 담은 만세혁명이 들불처럼 한반도에 퍼져 나갔다. 이는 일제의 무단통치의 종말을 고함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시작을 천하에 알리는 불길이었다.

이민족들도 이에 경탄하며 잔학무도한 폭력의 시대를 끝낼 등불로서 조선인들을 기리게 되었다. 묘하게도. 1919년 3월 1일 시작된 불길은 98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꺼지지 않고 더욱 거세게 타오르고 있다. 일제의 폭압에 전국적으로 번진 불꽃은 1960년 4월 부패한 권력에 맞서 뜨겁게 타올랐으며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1980년 광주에서 유신시대의 종말을 불러왔으며, 다시금 민주주의를 짓밟는 군화에 저항했다. 1986년 6월의 불길은 군사정권에 사형을 내렸으며 2016년 겨울을 녹이며 또다시 부패한 권력을 집어삼킨 거대한 하나의 촛불이 되었다.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일반 시민들의 마음속에는 98년전 종로에서, 애오개시장에서, 전국 각지에서 흔들었던 태극기가 있다. 이 태극기기가 한국인의 정신적인 자산이자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물줄기로 대대손손 흘러 넘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시작에서 기미독립혁명의 100년째를 준비하는 시민위원 310명 모두가 하나하나 각각의 파도가 되어 격랑의 시기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정신적인 큰 기둥이 되기를 기원한다.

 



이은주 시민님

먼저 3ᆞ1운동100년 대한민국100년 행사에 시민위원310으로 참여할 수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방문과외 교사 직업을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저녁시간에 참여해야 한다는것이 좀 부담스러워서 잠시 갈등을 느꼈지만 제 선택에 책임을 다하고 싶었고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을 알고 싶어서 참석을 결정했었습니다. 혹시 괜히 수업까지 빼고 참석하는건 아닐까?하는 걱정스러움을 가지고 말이지요.

하지만 2시간의 강연이 끝나고 나서의 솔직한 저의 후기는 꽤나 흐뭇하고 만족스러웠습니다. 지난해 초부터 시작한 문화유산교육전문가로서의 역할과 사단법인 우리역사 바로알기 1급강사로 각 학교에서 나라사랑교육을 하고있는 제게 또 하나의 자긍심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저도 나라사랑교육을 할때 학생들에게 국경일ᆞ기념일 노래와 독립군가 ᆞ광복군가를 소개해 주기도 하는데도 불구하고 제자신도 시대별 애국가는 강연을 통해 처음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동학혁명부터 3ᆞ1운동까지 년도별로 설명해 주셨던 3ᆞ1운동의 뿌리와 태화관에 관한 사진자료와 부연설명들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서해성감독님의 우스개처럼 말씀하시던 ‘5년 주기설’ 또한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강연내내 거의 맨뒷자석에 앉아 있었지만 길다면 긴 2시간의 시간동안임에도 모두 다 전달해주지 못할것 같은 아쉬움에 강연내내 전전긍긍하시던 서감독님의 열정이 멀리있는 제게 온전히 전해져왔습니다. 그래서 또한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현장에서 수업을 해야하는 저에게 다시금 확실한 사명감과 자긍심도 갖게되는 유익한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3ᆞ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 행사를 위한 시민위원310으로서의 책임감으로 마음이 조금은 무거워지기도 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저의 고민들도 계속되는 강연과 행사에 참여하면서 해결되어 가리라 믿어봅니다. 왜냐하면 3ᆞ1운동은 ‘시간의 건국’ ‘공간의 건국’ ‘인간의 건국’ 이라고 하셨던 서감독님의 말씀이 제 가슴에 쿵하고 박혀버렸거던요.

역사는 ‘지금 그순간’ 그리고 ‘어제로서의 오늘’ ‘내일로서의 오늘’ 이라는 강연 말씀도, 더불어 “역사에 밥을 주자” 라고 하시던 말씀도 제가 앞으로 더 열심히 걸어가야할 문화유산해설사와 나라사랑교육 외부강사 수업을 하는 내내 깊이 새겨질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2시간 동안 열정을 다하여 강연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시민위원310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유익한 강연과 활동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하는 시민위원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 서거일 추모 참배와 백범일지 낭독회

 

 

 

1949년 6월 26일
해방된 조국에서 백범 김구 선생은 민족통일과 친일청산의 꿈을 못 이루신 채 안두희가 쏜 흉탄에 돌아가셨습니다.

 

 

2017년 6월 26일
효창공원 내에 자리한 선생의 묘역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선생을 추모하고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의 시민위원분들도 선생께 참배하고 함께 소리내어 백범일지를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선생에게 향불을 올리고 묵념을 드렸습니다.

 

이날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참석해주신 조광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5살 무렵 갈월동에서 본 김구 선생의 장례식을 회상하셨습니다.

 

너무 어려서 김구 선생이 어떤 분인지, 사람들이 왜 저렇게 울며 행렬을 따라가는지 몰랐다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알게 되었다는 조광 위원장.

 

김구 선생의 증손자인 김용만 단장은 어릴 적 잘못을 하면 유독 더 많이 혼났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어린 증손자에게 할아버지의 무게는 때론 무겁기도 했나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엿한 사회 초년생으로 그리고 시민위원310의 단장으로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걷고 있습니다.

 

 

 

새벽 굼벵이는 살고자 흔적 없이 가버리나
저녁 모기는 죽기를 무릅쓰고 소리치며 달려든다.

시민들은 각자의 목소리로 백범일지를 낭독하였습니다. 묵독이 아닌 애써 소리를 내어 선생을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함이었습니다.

 

 

 

 

 

3·1운동 서울시기념사업 서해성 총감독은 백범일지의 문학적 가치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사의 큰 어른이 썼기에 우리는 역사적 의미만을 생각하지만 사실 백범일지는 문학적으로 아주 재미있고 잘 써진 책이라고 하네요.
시민들로부터도 생각보다 백범일지가 읽기 쉽고 흥미진진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먹구름이 가득했지만 다행히 행사가 끝날때까지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 단체사진을 찍고 나서야 신발을 다 적실 만큼 장대비가 쏟아졌고 그럼에도 몇몇 시민분들은 효창공원 내의 삼의사묘, 임정묘역까지 발걸음을 옮겨 참배를 드렸습니다.

 

평일 낮시간, 참석이 쉽지 않음에도 와주신 시민분들께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소리높여 읽었던 백범 선생의 글이 분명 선생께 가 닿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100년 학교 시리즈 강연 ①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


 

시민위원310 신청 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첫 행사 <100년 학교 시리즈 강연>이 6월 14일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렸습니다.
평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부터 가족단위의 예비 시민위원까지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셨습니다.
열정적으로 강연을 듣고 참여해주시는 모습에 놀라고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100년 학교 시리즈 강연>은 8월과 9월에도 진행될 예정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페이스북(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개별 안내 등을 통해 공지됩니다.

더불어 6월 23일까지 100년 학교 강연 후기를 모집하고 있으니 많은 참여 바랍니다.

 

백년을 향하여


 

때이른 더위를 식혀주는 바람이 불던 5월 20일.
정동에 위치한 이화100주년기념관에서 시민위원 신청자분들의 뜻깊은 1차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날 모임에서는 시민위원에 신청해주신 분들에게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사업을 소개하고
시민위원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프로그램을 안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운영위원 33인의 인삿말과 시민위원310의 단장 김용만씨(김구 선생 증손자)의 활동다짐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기미독립선언서 낭독 퍼포먼스, 축하공연, 시민분들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지며 행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앞으로 시민위원310 프로그램과 관련한 안내는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됩니다.
다양한 강연과 행사가 준비될 예정이오니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그때 시가 있었네”


 

2017년 5월 19일 저녁

이른 더위가 가신 덕수궁 함녕전 마당에 시 낭송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친일문학이 모국어와 우리나라를 어떻게 치욕스럽게 하였는지 되짚어보는 시간이었던

“그때 시가 있었네” – <친일문학을 처음 읽다>

이번 행사는

“우리는 왜 학교에서 친일문학에 대해 공부하지 않는 것일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왜 우리는 학교에서 친일 문학, 친일 문학인에 대해 공부하지 않는 것일까요?

일제에 의해 쫓겨난 고종 황제가 승하한 곳이자 3.1운동 현장인 덕수궁에서 진행되어

더욱 의미있었던 행사에는 많은 시민분들과 문학계 인사들이 참석해주셨습니다.

일제를 찬양하는 글을 일본어로 쓴 이광수의 <전망>(1943)

가미카제를 미화한 서정주의 <마쓰이 오장 송가>(1943)

최남선의 <나가자 청년학도여>(1943), 노천명의 <싱가파 함락(1942), 모윤숙의 <어린 날개 -히로오카 소년항공병에게>(1943) 를 읽고 비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숱한 친일 작품 가운데 고작 몇 편일 뿐이었죠.

문학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시’를 모국어로 써내러가면서
그 내용에는 일제를 찬양하고 전쟁의 정당성을 말하며 우리 겨레가 일본과 뿌리가 같다고 주장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문학이 어떻게 일제에 복무했는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욕스러운 친일시만 읽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뜻깊은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바로 독립운동가 이육사님의 시도 함께 읽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낭독자는 가수 안치환님과 이육사선생의 유일한 혈육이신 이옥비님이셨습니다.

이육사 선생의 시를 읽으니 분했던 마음과 모욕적인 느낌이 사라지고 어느새 우리 말의 아름다움과 섬세함에 빠져들었습니다.

문학은 이렇게 사람을 금새 사로잡습니다.

그래서 친일문학은 더욱 위험한 것이죠.

이렇게 친일문학을 낭독하고 비평하는 시간 이상으로 필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독립운동가들도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렸을 텐데 그것들 역시 왜 교과서에 실리지 않고 배울 수 없었는지 생각해봐야합니다.

독립군가, 해방미술, 독립문학을 누구나 익숙히 노래하고 따라 그리는 그날을 꿈꾸며 이육사 선생의 시를 남깁니다.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만인보,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단지 건물 외관에 끌려 들어온 사람부터 매일같이 공부방으로 이용하는 사람까지.
서울도서관은 많은 사람들의 지식창고이자 쉼터로 사랑받는 공간입니다.
이런 서울도서관에 고은 시인의 서재가 들어섭니다.
1986년부터 2010년까지 25년간 4001편의 시를 총 30권으로 엮은 한국 최대의 연작시집 『만인보』.
이 『만인보』가 탄생한 고은 시인의 ‘안성서재’를 서울도서관 3층 서울기록문화관 내 약 80㎡규모로 재구성합니다.

“『만인보』는 만인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만인보』는 만인의 방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공간을 만인의 방으로 명명합니다.”

고은 시인이 직접 이름붙인 만인의 방에는 시인이 직접 사용했던 서가와 책상, 『만인보』 육필원고, 집필 당시 조사했던 인물의 연구자료와 도서, 메모지 등이 그대로 옮겨져 꾸며집니다.

 

 

그리고 <만인의 방>조성을 위한 협약식이 5월 17일 서울도서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고은 시인을 비롯한 박원순 서울시장, 서울도서관 이정수 도서관장, 한국작가회의 최원식 이사장, 안상학 시인, 한겨레신문 고광헌 전 사장 등이 참석한 이번 자리에선 고은 시인의 소장품과 작품 기증을 위한 업무협약을 통해 더 뜻깊은 공간을 만들겠다는 서울시의 다짐과 기쁘고 감사하다는 고은 시인의 인삿말이 이어졌습니다.

2017년 11월 경 개관식을 치룰 만인의 방에서는 ‘만인보 이어쓰기’등 <만인보>를 주제로 한 다양한 시민 참여 행사가 마련되며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합니다.

‘시로 쓴 한국인의 호적’ <만인보>는 1980년 시인이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됐을 때부터 구상을 시작하였으며 김구 선생의 어머니인 곽낙원, 장준하, 이육사 등 독립운동가를 비롯해 고대와 현대를 오가며 등장하는 인물만 5600여 명에 달합니다.

시민이 중심이 된 3·1운동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면서 이러한 작품이 탄생한 공간이 일제 강점기 식민통치의 상징인 경성부 건물이자 3·1운동 현장 일대에 자리 잡은 서울도서관에 조성되는 것 역시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https://youtu.be/OCfNYO_bGCU

[서울도서관 내 「만인의 방」조성 사업 관련] 고은시인과의 협약체결식(서울시 공식 라이브 페이지)
서울도서관에 ‘만인보’의 고향 고은 시인의 서재 조성한다(경향신문)
‘만인보’ 고은 시인 서재 ‘만인의 방’ 서울도서관에서 재탄생(노컷뉴스)
고은 ‘만인보 안성 서재’ 재현한다(한겨레)
고은 시인 서재 서울도서관에서 재탄생(YTN)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공간 C-47 오픈식


 

상해임시정부 수립기념일과 같은 4월 13일.
광복군과 임정요원들이 탔던 비행기와 같은 기종이 서울 여의도공원에 놓여있습니다.
국기 게양대와 농구대 옆에 놓여있는 이 비행기는 2015년부터 서울시 광복7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시민들과 만났고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2019) 조금 더 젊고 활기찬 모습으로 단장했습니다.

<대한민국 100년의 탄생>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번 개관행사에서는 우당 이회영 선생 손자 이종걸(국회의원), 백범 김구 선생 증손자 김용만(회사원)이 들려주는 ‘나의 할아버지의 항일운동 이야기와 생생한 임시정부 환국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3·1운동의 시작과 그로 인해 탄생한 임시정부의 여정을 담은 <대한민국 100년의 탄생>다큐멘터리도 함께 시청했습니다.

올 한해 C-47기념관에서는 여름 밤 비행기 콘서트, C-47기 영화제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도심 한가운데 마련된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공간’이라는 소중한 곳에서 시민여러분들의 참여로 뜻깊은 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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