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역 다시 문 여는 날

9월 18일 아침부터 지하철 3호선 안국역이 분주합니다.


바로 안국역이 전국 950개 전철역 중 최초이자 유일한 ‘독립운동테마역’으로 다시 태어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안국역에서 우리 헌법의 역사를 담은 ‘100년 헌법’
독립운동사를 강물로 구성한 ‘100년 강물’
독립운동가 얼굴과 역사를 100초 동안 볼 수 있는 미디어 기둥 ‘100년 기둥’
안국역에 입장하고 탑승하는 순간이 임시정부에 들어서는 순간으로 바꿔놓은 ‘100년 하늘문’과 ‘100년 승강장’ 등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단순히 독립운동의 역사를 나열한 안내판 정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하철 역 전체가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그것도 3·1운동 중심지였던 태화관, 인사동, 탑골공원, 북촌 등이 맞닿아있는 안국역에서 말입니다.

이날 안국역 재 오픈을 축하하기 위해 많은 독립운동가 후손분들과 정치인, 그리고 서울시민분들이 함께 자리해주셨습니다.

사회는 서울100 위원이자 배우이신 정동환씨께서 맡아주셨습니다. 국민배우답게 매끄럽고 틀에 박히지 않은 멋진 진행을 보여주셨습니다.

 

조광 국사편찬위원장을 비롯한 여러 의원들도 안국역이 다시 태어나는 것에 대한 축하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일상의 공간에서 독립운동 역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참으로 의미있고 뜻깊은 일이라 여겨집니다.

<안국역 다시 문 여는 날>에서 가장 중요한 차례 중 하나인 ‘100년 기둥’ 제막식도 진행되었습니다.
100년 기둥은 100년 충전소 한 가운데 있는 것으로 대한민국 100년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거대한 미디어 기둥입니다.
독립운동을 현대적으로, 미술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테너와 역사어린이합창단의 압록강 행진곡을 들으며 100년 충전소에서의 일정은 모두 마쳤습니다.

이제 100년 기둥, 100년 충전소 공간은 많은 시민들에게 쉼터이자 일상에서 독립운동 역사를 느끼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모두 자리를 이동해 안국역 4번출구로 이동하여 100년 하늘문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독립운동가 후손이 모였던 순간이 있을까요? 감격스러운 장면이었습니다.

다시 지하4층 100년 승강장으로 내려온 독립운동가 후손과 초대손님들은 시민위원310의 환대를 받으며 광복군 모자를 건네 쓰는 퍼포먼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크린도어에 새겨진 선조와 나란히 서 사진을 찍기도 하였습니다. 이날은 신흥무관학교를 세우신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 이종걸 의원도 참석해주셨습니다.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새겨진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기분은 어떠할 지 상상이 잘 가지 않습니다.

오전 내내 달리는 열차 안에서 시민들에게 새롭게 바뀐 안국역에 대해 안내하고 홍보를 진행해준 시민위원310도 있었습니다.

모두 함께 단체사진을 찍으며 이날 행사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를 기리고 섬기는 일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립운동이라는 것이 너무 멀리 있고 지나치게 우상화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독립운동가를 섬기고 배워야하는 것은 맞지만 그 정신과 마음을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곳으로 끌고와야만 내 것이 됩니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이 시민들의 일상에서 독립운동을 느끼고 자연스레 스며드는 공간이길 바랍니다.

[심포지엄] 3·1운동 100주년 기념 국제 심포지엄 ‘세계 망명정부와 임시정부’

건물 중간부분이 허공에 붕 떠있는 구조로 되어있는 종로타워 33층

세계 각국의 다과가 보입니다.

저기 있는 나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모두 망명정부·임시정부시기를 지나 법통을 계승한 국가들입니다.

9월 11일 상해·한성·러시아 연해주령 3개 지역에서 설립된 임시정부가 상해 통합임시정부를 구성하게 된 날을 기념하여 한국 최초로 ‘세계 망명정부와 임시정부’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1919년 설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지금까지도 ‘승인’ 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 망명정부와 임시정부의 비교·연구를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과 법통을 밝히고자 독립운동가 후손 분들과 많은 시민위원이 참석해주셨습니다.

독립운동가 원종린 선생의 후손인 동아대학교 국제학부 원동욱 교수의 사회와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서해성 총감독의 소개로 심포지엄이 시작되었습니다.

 

1주제

발제 1 세계 망명정부, 임시정부 연구 (이해영 한신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국제관계학부 교수)

지정토론

김삼웅 (前 독립기념관장)

 

2주제

발제 2 상해 임시정부 활동 연구 (쑨커즈(孫科志) 중국 푸단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지정토론

윤대원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

 

3주제

발제 3 노령 임시정부 활동 연구 (박환 수원대학교 사학과 교수)

 

이해영 교수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제적으로 승인 받기 위해 어떠한 노력과 좌절을 겪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당대 임시정부의 승인 문제는 국제‘법’적이라기보다 국제‘정치’적인 것으로 국제관계가 크게 작용했으나 국민들의 집단적 자유의지 표출이 가장 큰 의의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해영 교수의 발제에 대한 지정토론은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진행했습니다.

임시정부의 외교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승인 받지 못한 이유와 연합국 승인 이후 임시정부 처리과정 등을 질문했습니다.

쑨커즈 교수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왜 상하이를 선택했으며 어떤 활동을 했는지 면밀히 살펴봤습니다.

임시정부가 한국 역사만이 아니라 한중관계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특히 상해 하비로(霞飛路)에 위치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첫 번째 청사의 위치를 각종 사료를 통해 밝힌 부분이 매우 의미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윤대원 교수는 쑨커즈 교수의 발제에 대해 지정토론자로 나서며 1920년대 이후 중국 관내를 벗어나지 못한 상해 임시정부의 위상과 현재 중국 대만과의 관계를 예시로들며 법통성 문제에 관하여 질문을 던졌습니다.

마지막 발제자인 박환 교수는 교과서에서도 많이 다루지 않았던 노령 임시정부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1919년 대한국민의회라는 정부조직을 만들어 활동한 러시아 임시정부의 성립과 활동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발제가 끝난 후 시민들과 종합토론 시간을 가졌습니다.

많은 시민들은 우리가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임시정부의 가치와 의미를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아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다른 여러 국가들이 어떻게 종전 후 법통을 이어갔는지 비교와 연구를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새롭게 알아봤습니다.

3·1운동은 우리 역사상 가장 혁명적으로 국가의 성질을 바꾼 사건이며 3·1운동이 제도화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이어졌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헌법의 근간이 된 임시정부가 어떻게 계승되어왔는지 함께 생각하고 들어주신 시민위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민토론캠프310 <3·1운동은 토론이다>

 

독립운동에 대해, 3·1운동에 대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말을 하고 자기 주장을 펼친 적이 있었을까요?
3·1운동 100주년을 앞둔 지금 더 열정적으로 독립과 친일과 3·1운동, 우리 말 등에 대해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2018년 8월 25일
여름 끝자락에서 시민위원310이 만나 6개 주제로 뜨거운 토론을 벌였습니다.
결코 만만한 주제는 아니었습니다.

1주제 : 여성독립운동가는 누군가의 아내인가 독립운동가인가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
2주제 : 윤봉길, 안중근, 이봉창은 애국자인가 테러리스트인가 (김용만 시민위원310 단장)
3주제 : 친일예술, 예술인가 친일인가 (배다리 공공미술작가)
4주제 :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 왜 사과해야 하나 (박찬승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
5주제 : 중국에 있는 항일유적, 어떻게 해야 하나 (원동욱 동아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6주제 : 우리말 속 일본말 써야하나 말아야하나 (성기지 한글학회 학술부장)

시민위원310은 직접 선택한 주제를 가지고 모여앉아 토론을 벌였습니다.
다른 방향으로 토론이 엇나가면 각 조별 주재자들이 조언을 해주고 진행을 도와주셨습니다.

 

시민위원310은 테러와 독립운동 활동을 구분짓는 기준에 대해 토론하고 이미 뿌리박힌 일본어의 예시를 찾으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무엇보다 학생신분인 시민위원310 위원도 본인 의견을 적극 이야기하고 나름의 논리를 근거로 주장을 펼쳐나가는 장면도 쉽게 볼수 있었습니다.

3·1운동 당시 200만 백성이 광장에 나와 독립을 외치며 깨어났던 것처럼
시민위원310 100명이 모여 나누는 토론 역시 3·1운동의 연장선일 것입니다.
100주년을 맞이하는 시민위원310 위원의 주체적인 모습은 참으로 인상깊고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고민도 있었습니다.
이런 토론에서 나온 의견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나?
정말 우리 의견이 토론에서 그치지 않고 현실로 이루어져 중국에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도 관리가 잘 되고, 친일미술도 교과서에 실려 아이들에게 제대로 교육시킬 수 있게 해야하는데 실현 가능한 일인가?

한시간 이상 토론한 결과를 큰 종이에 옮겨 적은 뒤 사진을 찍어 대형 스크린에 띄웠습니다.
토론 결과를 발표하고 종합 토론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성독립운동가는 누군가의 아내인가 독립운동가인가’ 라는 주제로 토론을 진행했던 1,2조는

  • ‘독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여기에는 사회주의도 있고 민족주의도 있고 여성주의 역시 존재한다.
    우리는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해야한다.
  • 아직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찾아내고 주체적으로 그 정신을 이어가야한다.
  • 유관순 열사 역시 3등급의 서훈을 받으셨는데 1등급으로 승급시켜달라는 청원도 시민위원310의 이름으로 진행해보면 좋을 것 같다.
  • 우리는 여성독립운동가를 영화와 드라마로만 접하고 있다. 이들을 재조명하고 발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3·1운동이 일어나고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제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발굴하는데 다시 10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한다. 그것이 3·1운동의 정신이다.

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윤봉길, 안중근, 이봉창은 애국자인가 테러리스트인가’ 주제로 토론을 한 3,4조는

  • 테러는 공포 확산이 목적인 행동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행위로 국제적 관심을 모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많은 무장독립운동가들은 최대한 심혈을 기울여 대상을 선정하고 구국과 관련이 없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 더불어 관련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했으며 ‘총알에도 눈이 있다고 생각하자’는 어느 영화 대사처럼 일반 시민에게는 피해가 없도록 최대한 신경을 썼다. 테러가 아닌 의열이다.

이러한 3,4조 토론에 대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신채호 선생은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독사 한 마리를 죽임으로써 죄 없는 까치새끼 10마리를 살리는 것이 참 불법의 가르침이라는 말을 생각해봐야한다.”라는 평을 주었습니다.

‘친일예술, 예술인가 친일인가’ 주제로 토론을 진행한 5,6조는 두개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 자기 재능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정치물일 뿐이다. VS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로 분류할 수 있다.

모든 토론이 결론을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5,6조 역시 의미 있는 의견들이 다양하게 나왔습니다.

  • 친일예술은 정치적 도구로서 사용된 예술이다. 정치적 여과 없이 이용되고 교육에 바로 투영이 되었다.
  • 친일논란이 있는 예술을 모두 없애버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내리지 못했다.
  • 다만 ‘나쁜 예술’을 기억하고 교육용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 이러한 작품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중요하다. 이면적인 내용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 토론 주제를 바꾸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친일 예술, 예술인가? 예술이 아닌가?’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 왜 사과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토론을 펼친 7,8조는

  • ‘협상’을 할 문제가 아닌데 협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안된다.
  • 여성문제와 전쟁범죄라는 것을 앞에 두고 일본에 압력을 가하고 국제여론을 만들어야 한다.
  • 하지만 우리도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사회 여론을 만들어야 한다.
  • 한국 사회 안에서도 인권과 여성에 대한 의식이 낮은데 이 부분도 함께 올려야 한다.
  • ‘위안부’라는 단어부터 바꿔야 한다. 역사는 정명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 일본보다 도덕적 우위를 가지기 위해선 성노예뿐만 아니라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당했던 수난사를 알려야하고 우리부터 공부해야 한다.

라는 결론으로 발표를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결론을 낸 조로 뽑혀 100년 물병을 부상으로 받기도 하였습니다.

‘중국 등에 있는 항일유적, 어떻게 해야 하나’로 토론을 한 9,10,11조는

  • 남북협력을 통한 공동역사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 항일유적을 보존하고 발굴할 때 지속적인 관심과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 IT기술을 접목하여 중국 등에 있는 항일 유적지를 안내하고 설명하는 어플 등을 개발해야 한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이종찬 위원장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중국과의 네트워크가 이제는 많이 노화되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관계를 지속하던 사람들은 모두 은퇴를 하고 새로운 인물들로 채워진 상황에서 하루 빨리 유적지와 사적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우리나라 영토 안에 존재하는 독립운동가 사적지 역시 찾아내야 한다는 의견을 주었습니다.

마지막 주제인 ‘우리말 속 일본말 써야하나 말아야하나’로 토론을 진행한 12,13,14조는

  • 남북언어를 통일하는 연구를 진행하자.
  • 어른들은 일본어를 사용하지만 그것이 일본어라는 점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언어를 배우고 습득하는 과정인 초·중·고 교육과정부터 시작해야 한다.
  •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방송이다. 방송을 통해 노출되는 일본어들은 확산이 빠르고 영향력이 높다.
  • 쉬운 우리말 사전이 있지만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으니 홍보를 통해 알리고 학교에도 비치하자.
  • 말과 글 광복이 매우 급하다!

라는 결론으로 종합토론까지 마무리하였습니다.

시민위원310은 다른 조 토론을 경청하며 의견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토론캠프가 마무리되고 시민위원310에 대한 위촉장 수여식도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2018년 새롭게 시민위원310 활동에 신청해주시고 열심히 활동해주신 시민위원310 여러분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함께 준비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대시민 토론캠프를 가졌습니다.
시민위원310 행사 중 가장 큰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모두가 광장에 나와 독립을 말했던 1919년 그날처럼 <시민토론캠프310 3·1운동은 토론이다>에 참석해주신 분들 모두는 그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눴으리라 믿습니다.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C-47]<여의도공원 비행기 영상쇼 : 어느 소년 광복군의 비행>

높은 빌딩과 국회의사당 사이에 위치한 여의도공원은 언제나 많은 시민들로 북적입니다.
평화로운 금요일 오후,
잠시 후 이곳에 비행기 한 대가 이륙할 것입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C-47 비행기 전시관은 스크린으로 변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소년 광복군’의 비행이 시작됩니다.

 

 

미디어 파사드로 재탄생한 우리 독립운동 이야기가 C-47 비행기 위에서 상영이 되었는데요.
소년 광복군이 만주벌판을 누비고 무장투쟁을 벌이는 이야기를 보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여의도공원을 찾아주셨습니다.

씩씩하고 당차게 독립운동을 펼치는 소년 광복군은 1:1000으로 일본군과 맞서 싸운 김상옥 의사의 모습을 본따 탄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소년 광복군이 위기에 쳐했을 때 구해준 비행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조종사 권기옥 선생이기도 합니다.

 

 

1945년 8월 18일
1945년 11월 23일
광복군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타고 온 C-47 비행기에 우리 독립운동사가 펼쳐지고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이 띄워진 모습이 새삼 감격스럽고 뭉클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날 멋진 공연을 펼쳐 준 배우 심현서 군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김구 선생님! 김규식 선생님! …”

소년의 목소리를 듣고 C-47 비행기 안에서 독립운동가들이 하나하나 걸어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시민위원310 중 청소년, 청년으로 구성된 청색100 친구들이 임정요인 15인 역할을 맡아 걸어나온 것인데요.
실제 독립운동가가 살아돌아온듯 한 광경에 많은 시민들이 박수를 보내준 순간이었습니다.
청색100 친구들도 진지한 마음과 자세로 역할에 임해주었습니다.

어린이역사합창단의 압록강 행진곡을 듣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하나 둘 앞으로 나와 소감을 말하였습니다.
김구 선생, 이회영 선생, 조소앙 선생, 윤봉길 의사, 권기옥 선생, 김상옥 의사 등 후손들은 광복군 4명이 여의도비행장에 착륙한 날 밤, 일본군 대령이 따라준 항복주를 받은 것처럼
그 날을 재연하고 시민들과 함께 ‘항복주 퍼포먼스’를 재연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진출처 : THE FACT 포토(https://goo.gl/6jLDLa)

이날 김용만 시민위원310 단장은 윤경빈 선생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였습니다.
윤경빈 선생은 김구 선생의 경호를 맡으시는 등 광복군 총사령부에서 활동을 하며 1945년 11월 23일 C-47 비행기를 타고 환국하신 독립운동가이십니다.
서울시가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여의도공항에 처음 C-47 비행기를 가져다 놓았을 당시 참석하여 주셔서 ‘항복주’를 받으시고 비행기도 탑승해보셨습니다.

2018년 3월 8일 선생의 별세 소식은 우리를 안타깝게 하였는데요.
분명 <어느 소년 광복군의 비행>을 보셨다면 참 좋아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거대한 역사가 흘러가는 것을 느끼며 이럴수록 3·1운동 100주년도 잘 준비해야겠다는 각오를 해봅니다.

 

 

미디어 파사드 <어느 소년 광복군의 비행>이 마무리된 이후에는
<내가 만든 움직이는 100년> 공모전 시상식이 이어졌습니다.
항일 역사를 시민들이 직접 자기 손으로 표현하고 현재화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던 공모전이었습니다.
특히 역사에 관심이 높지 않은 젊은층의 참여가 높았으며 어린 아이까지 수상을 하여 뜻깊은 순간이었습니다.

어느덧 C-47 비행기가 여의도공항에 자리한 지도 햇수로 4년차 입니다.
많은 시민분들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다녀갔습니다.
독립운동가를 부르는 콘서트도 열렸고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상영하였으며 수 차례의 토크콘서트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우리 독립운동사 명장면을 모아 멋진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하여 미디어 파사드라는 장르로 시민들에게 선보였습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C-47 비행기 전시관을 통해 시민들에게 소개될까요?

아직까지 유일한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공간 C-47은 3·1운동 100주년 너머까지도 비행할 계획입니다.

 

‘경술국치일’ 맞아 독립유공자 후손과 함께 걷는 국치길 답사

♪우리는 한국 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 나가 압록강 백두산 넘어가자

남성중찬단 ‘라 클라쎄’의 압록강 행진곡, 고향으로 국치길 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통치권이 넘어간 경술국치일을 잊지 않기 위해 서울시는 2015년부터(광복70주년) ‘국치길’을 독립운동가 후손, 시민들과 함께 걷고 있습니다.

국치길 답사의 시작은 언제나 ‘통감관저터’입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거꾸로 세운 동상’이 있습니다. 주한 공사이자 남작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을 받치고 있던 잔해를 발굴해 거꾸로 세운 것입니다.

평일 낮임에도 예상보다 많은 시민위원310이 함께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김구, 윤봉길, 이회영, 조소앙, 권기옥 등 독립운동가 후손도 함께 국치길을 걷기 위해 자리해주었습니다.

조선총독부 자리에서김익상 의사 의거를 되새겨보고 ‘노기 신사 터’도 방문하였습니다.
노기 신사 터에는 수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신사에 들어가기 위해선 이 곳에서 손을 씻고 입장했다고 합니다.

서울 한복판에 거대한 신사를 여럿 조성하였던 일제.
조선인의 정신을 지배하기 위해서였겠죠.
관광을 위해 쉽게 방문하는 ‘남산 계단’이 바로 조선신궁 본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384개의 층계를 오르며 그 당시 조선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조선신궁 건설계획에 따라 사라진 고종의 ‘한양공원’터도 방문하였습니다.
오래된 세월만큼 비석에는 6.25 전쟁때 생겨난 탄피자국도 있었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이 함께 사진을 찍은 순간에는 마음이 뭉클하기도 하였습니다.

옛 남산식물원 자리가 바로 조선신궁터입니다.
시민위원310과 독립운동가 후손은 안중근 의사 동상 앞에서 답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비가 나리는 날씨에도 이탈자 없이 함께 국치길을 걸어주었습니다.

걷고 또 걸으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걸으면
자연스레 길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렇기에 2019년 8월 29일 경술국치일에도 우리는 똑같이 국치길을 걸을 것입니다.
반복해서 걸으며 길을 내고 땅을 다지며
이곳에서 우리 주권이 일제에 넘겨졌었던 것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함께 걸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청색100 위원 첫 모임 <청색 파티>

서울시청 바스락홀이 시끌벅적합니다.
누가 오길래 블루카페트가 깔리고 가랜드가 걸리는 것일까요?

바로 청소년, 청년 위원들로 구성된 청색100의 첫 모임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죠!
청색 100은 시민위원310 중 만29세 이하로 구성된 것으로 2017년 ’33인 청소년위원’에서 확대된 개념입니다.

이날은 특별히 모윤석 위원이 멋진 랩으로 축하무대를 가져주었습니다.

비보잉팀의 공연도 보고 서해성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총감독의 축하말과 김용만 시민위원310 단장의 청색100 활동 소개도 들었습니다.

서해성 총감독은 “3·1운동의 주역은 청소년과 청년이었습니다. 3·1운동을 다시 청년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여러분을 모셨습니다. 어떤 활동이라도 좋습니다. 젊은 3·1운동을 만들기 위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주세요.”라는 당부말을 전했습니다.

청색100 친구들은 김용만 단장이 교과서에서만 보던 김구 선생의 증손주라는 것에 굉장히 신기해하고 반가워하였습니다. 김용만 단장 역시 하고싶은 활동, 좋은 계획이 있다면 언제든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사무국으로 말해달라며 청색100의 적극적인 활동을 부탁하였습니다.

 

청색100 친구들이 입장할 때 3가지 색종이 중 하나를 골라잡았습니다. 바로 조 구성을 위한 것인데요.

조별로 모여앉은 청색100 친구들은 자기소개를 하고 조 이름을 정하고 조장도 뽑았습니다.
조장을 뽑을 때는 항상 두근두근합니다.

첫 만남인만큼 앞으로의 활동 계획과 각오를 발표하며 마쳤습니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3·1운동 100주년의 주인으로 참여하겠다는 마음만은 같았습니다. 1919년 만세시위대 가장 앞에서 달렸던 청년들처럼 서울시 청색100 위원들도 내년 3·1운동 100주년 그날 가장 앞자리에 서 있길 바랍니다!

[청색100]찾아가는 역사 강연① <100년 전 나는>

 

3·1, 6·10, 11·4, 4·19 의 공통점은 다음 중 무엇일까요?

① 미생 ② 동생 ③ 학생 ④ 고생

 

정답은 학생입니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고 주체가 되었던 학생들의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찾아가는 역사 강연 첫 번째 학교는 이화여자대학교사범대학부속이화금란고등학교였습니다.

7월 13일 이대부고 시청각실에서 서해성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총감독의 강연을 듣기 위해 학생들이 모였습니다.

 

종소리가 끝나기 전 부지런히 입장하던 학생들도 강연이 시작되자 금세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학생운동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3·1운동, 6·10 만세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 4·19 학생운동, 오늘날의 촛불시위까지 어른이 아닌 학생과 청년이 주인공이었습니다.

 

학생운동을 이끈 100년 전의 선배들도 지금의 학생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화학당 시절의 유관순 열사는 수업시간에 떠들다 혼나던 학생이었고 안중근 의사의 사진은 지금의 아이돌 사진처럼 인기 만점이었습니다.

 

역사책이나 교과서에서도 알려주지 않았던 흥미로운 이야기에  이대부고 학생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손을 들어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을 해준 친구들은 알록달록 100년 물병을 선물로 받아갔답니다.

서해성 총감독은 우리나라 역사의 중대한 국면에는 늘 학생들이 있었고 과거의 선배들이 그랬듯 지금의 학생들도 새로운 100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함께 해주길 바라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특별한 말씀을 해준 서해성 총감독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정말 많았는데요, 미래의 씨앗이자 나라를 이끌어갈 주체가 될 학생 여러분들을 기대합니다.

열심히 강연을 들어주신 이대부고 학생들에게 감사드립니다.

 

100년 학교 시리즈 강연 ② <대한민국 100년 이야기>

 

인간은 어느 순간 ‘나’의 시작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내 태몽에 대해 부모님에게 묻기도 하고 내 이름 뜻에 대해 알고 싶어 옥편을 뒤적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1~2살 때 사진을 찾아보며 기억이 나는 듯한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의 시작은 어떠했을까요?
대한민국이란 나라 이름은 누가 만들었고,
어떤 나라를 세우고자 했을까요?

7월 12일
100년 학교 두번째 강연 <대한민국 100년 이야기>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탄생을 보았습니다.
명확하고 분명해서 착각할 필요가 없는 <대한민국 100년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대한민국 100년 이야기> 강연은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13층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아마 서소문별관에서 만나는 것은 처음일텐데 모든 시민위원310 위원들은 헷갈리지 않고 잘 찾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강연 시작 전 작은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카카오톡에서 ‘삼일운동 100 대한민국 100’ (@서울시삼일운동) 친구등록을 해주신 분들에게 100년 물병을 드린 것입니다.

이 100년 물병은 가로 100mm 크기로 아기 젖병 소재로 제작되어 따뜻한 물을 담아도 안전하답니다.
앞으로 답사와 토론캠프 등에서 시민위원310 손에 100년 물병이 들려진 것을 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

이날은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tbs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민주공화정 100년의 약속>을 함께 시청하였습니다.
<대한민국 민주공화정 100년의 약속>은 방송사 최초로 대한민국 민주공화정의 역사를 역사적 근거를 통해 밝힌 프로그램으로 지난 3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선정한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 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대한민국 민주공화정 100년의 약속>은 100여 년 전 임시정부 요인들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철저한 사상적 근거와 오랜 준비 끝에 민주공화제를 채택하게 되는 배경과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꿈 꾼 나라인 민주공화정 체제의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이지만 다큐멘터리를 차근차근 따라가다보면
오늘 우리가 살고있는 대한민국의 뿌리와 우리의 주권은 왕이 아닌 시민에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갑자기 수립된 것이 아닌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다는 것이며
대한민국은 미국과 소련과 같은 열강들이 준 것이 아닌 우리가 쟁취한 나라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1919년,
민주공화국이라는 용어가 임정요인들에 의해 채택될 때 다른 나라에서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장면에서는
시민위원310 위원들은 곳곳에서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30분 간의 다큐멘터리 상영회가 끝나고
서해성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총감독과 <대한민국 민주공화정 100년의 약속>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김성진 감독, 더불어민주당의 진선미 국회의원이 민주공화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날 국회 원구성으로 바쁜 가운데도 민주공화정으로 탄생한 국회를 대표하여 진선미 의원이 참석해주었습니다.
국회의 생일이라 할 수 있는 제70주년 제헌절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터라 국회에서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100주년을 위해 어떤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김성진 감독은 중국에 위치한 김신부로 22호 등을 다녀보고 우리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곳들은 모두 대형 쇼핑몰이 들어섰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한국 땅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엔 일제의 감시가 너무 심해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만주로, 상해로, 미주로 떠나야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독립군을 키우는 학교를 세우고 공군이 되어 비행연습을 하고 돈을 벌어 임시정부에 부쳤습니다.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우리의 선조, 선배들이 독립을 꿈꾸며 밟았던 그 땅들은 작은 표식 하나 품고 있을까요?

3·1운동으로 임시정부가 수립된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달 열흘만에 정부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은 전부터 공화국 수립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런 내용을 담고있는 것이 바로 1917년 대동단결선언입니다.
‘주권은 불멸하는 것이다.’라는 대목을 품고있는 이 선언 역시 임시헌장을 작성한 조소앙 선생이 이끌었습니다.
민주공화정은 한 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 차근차근 준비되고 설계되어 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해성 총감독은 우리 임시헌장이 담고있는 고도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동시에 몇 차례나 개정되고 깁고 더해왔던 우리 헌법에서 바뀌지 않은 첫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 대해 언급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민주공화정’
어려운 말입니다.
민주는 무엇이고 공화정은 무엇일까요?
쉽게 대답할 수 없지만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강연을 듣고나니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임시헌장이 담고있는 내용이 ‘유토피아’같아서 강연을 듣는 내내 행복했다고 합니다.
독립된 국가를 선포하고 사형과 신체형(고문, 태형 등)을 금지하였으며 공창제를 폐지하고 남녀 귀천, 빈부 계급 없이 모두 평등하다고 임시헌장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100년 전 대한민국을 세운 선배들이 꿈꾼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는지 질문해봐야 합니다.
우리의 민주공화정은 어디까지 와 있는지 말입니다.

서간도 시종기 낭독회 “서울을 떠나는 이회영과 6형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여성독립운동가는 300여 명 미만.
여성독립운동가 수는 과연 이렇게 적었을까요?

삯바느질, 식모살이로 번 돈을 임정에 보내고,
옥바라지 골목에서 독립운동가 아들 면회를 위해 하루 종길 기다렸습니다.

품 속에 소총 자루들을 숨기고 눈 오는 만주 벌판을 걷기도 하였습니다.
여성에겐 감시의 눈초리가 덜 하다는 장점 아닌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죠.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손끝에 내내 달려있던 바늘, 행주치마,
총알 하나로 두 명의 적군을 위협하였던 사격실력,
추락 따윈 두려워하지 않으며 비행했던 결계는 지금 누가 기억하고 있을까요?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 묘역에서 참배를 마치고 서울YWCA 회관으로 모였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큰 비가 내렸습니다.
의미가 있는 빗줄기인 것 같아 묵묵히 걷고 참배를 드렸습니다.

서해성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총감독의 사회로 낭독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작년 <백범일지> 낭독회에 이어 올해는 <서간도 시종기>를 낭독합니다.
<서간도 시종기>는 우당 이회영의 아내, 영구 이은숙 선생이 오직 기억과 손끝에만 의존해 써내려간 육필 회고록입니다.

전 재산을 들고 서울을 떠나 50여 년 동안 겪은 독립운동의 시작과 끝을 집대성한 육필 회고록이지만
‘규방문학’ 또는 ‘독립운동가 아내의 수기’라는 식으로 가치평가가 유보되어 왔습니다.

첫 낭독회인 만큼 이은숙 선생의 후손인 이종찬 위원장 부부, 이종걸 의원 부부가 낭독자로 함께 해주셨습니다.

첫 낭독자는 이종찬 위원장님의 부인인 윤장순 선생이었습니다. 시집올 때 즈음 읽어보았다는 <서간도 시종기>는 국한문 혼용으로 어려웠는데 지금은 한글판으로 이렇게 쉽게 읽으니 참으로 좋다는 소감을 내비치셨습니다.

또 소리내어 책을 읽은지 언제인가 더듬어보았더니 손주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준 것이 기억에 난다는 답을 주셨습니다.

‘낭독’을 한다는 것은 이렇게 다른 사람과 함께 읽는 것입니다. 한 책으로 두 명이 읽고 다섯 명이 읽고 열 명이 읽으니 얼마나 좋은 책읽기 방법인가요.

“만주를 오고 싶으면 미리 연락을 하고 와야지 생명이 위태치 않은 법인데, 하루는 조선서 신사 같은 분이 와서 여러 분께 인사를 다정히 한다. 수삭을 유하며 행동은 과히 수상치는 아니하나, 소개 없이 온 분이라 안심은 못했다.”

「서간도 시종기」에 언급된 만해 한용운 선생에 대한 내용입니다.
홀로 만주로 온 만해 선생은 하필이면 스파이로 오해받아 신흥무관학교 학생들에게 총을 맞으셨다고 합니다.
아무 연락도 없이 왔기에 스파이, 밀정으로 오해를 받은 것이죠.
이때 당한 부상으로 만해 선생은 평생 한쪽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사셨어야 했습니다.
기미독립선언서 공약 3장이 채워지지 못할 뻔한 순간이었습니다.

“내 생명을 뺏으려 하던 분을 좀 보면 반갑겠다”라며 대인배같은 말로 자신의 괜찮음을 표현하였던 만해 선생은
이후 불교계를 대표하여 3·1운동을 이끄셨습니다.

우당과 6형제가 들고 간 재산이 요즘으로치면 얼마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낭독회에서 나왔습니다.
69년 기준 모 월간지 추산으로 600억 규모라는 보도가 나왔으니 지금으로선 상상도 가질 않는 재산규모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을 붙이기도 조심스럽습니다.

그런 집안의 형제들 대부분이 독립운동을 하다 굶어죽거나 병사하였습니다.

이은숙 선생은 이후 고국으로 몰래 다시 들어와 고무신 공장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그 공장은 친일파 집안이 운영하는 공장이었습니다. 그렇게 번 돈을 다시 베이징으로 보내고 배고파 우는 아이들에게는 강냉이를 불려 주어야 했습니다.

하루는 공장에서 불량으로 생산된 짝짝이 고무신을 아들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제대로 된 고무신을 사줄 수는 없으니 짝이라도 맞지 않는 고무신을 준 것입니다.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온 이은숙 여사는 그 고무신이 아까워 신지도 못하고 끌어안아 잠이 든 아들의 모습을 보며 한참을 우셨다고 합니다.

그 아들이 이종걸 의원의 아버지라고 하십니다. 이 대목에서 관객도 패널도 모두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누군가는 ‘먹고 살기 위해 어쩔수 없이 친일을 하였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목숨을 걸고 국경을 건너고 모진 고초를 당하고 눈 속에서 산 속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그 사람들은 무엇이 되나요.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모두 바보라서 편한 것, 좋은 것을 몰랐을까요.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고 신념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는 그러한 존재를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고무신을 끌어안고 잠든 아들을 보았을 때 이은숙 선생의 심정은 어떠하였는지, 그 앞에서도 ‘먹고 살기 위해’라는 말로 변명을 할 수 있을지 묻고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이날 「서간도 시종기」낭독회 참석자 중 가장 어린 참석자의 목소리로 낭독하기도 하였습니다. 젊은 목소리로 듣는 「서간도 시종기」의 울림이 참으로 크고 듣기 좋았습니다.

낭독회를 마치고 명동에 새로 생긴 ‘우당길’을 함께 걸어보았습니다. 우당길은 이회영 선생의 집터였던 중구 명동에 새롭게 조성된 길로 우당 형제들에 대한 소개와 업적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조성된 곳입니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에도 많은 시민위원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함께 걸어주었습니다.

「서간도 시종기」낭독회는 앞으로 2번이 더 남았습니다. 작년에 이어 서울시가 낭독회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소리내어 읽음으로서 내가 김구가 되고 이은숙이 되어보자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낭독소리가 내 옆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가 닿는다면 독립운동 관련 책을 널리 전파하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이 날은 서울을 떠나는 독립운동가 집안에 대해 읽었습니다. 다음 낭독회에서는 간도에서 살아가는 독립운동가 집안에 대해 읽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읽고 걸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시민위원310] 2018년 시민위원310 첫 모임-시민위원 참여후기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었습니다.
처음 보아도 반가운 얼굴들이었습니다.

2018년 6월
시민위원310 첫 모임을 갖고 총 27명이 시민위원310 첫 모임 후기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중 함께 읽으면 좋을 네 개의 후기를 소개합니다.
찬찬히 읽어보며 그날의 두근거림을 다시 한번 만끽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시민위원310의 첫인상

김수연

시민위원310은 대학교 입학을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주체적으로 신청하고 참여한 첫 대외활동이다. 생각보다 시민위원310에는 대학생보다 직장인, 어르신들이 많이 참여를 하셨다. 그 광경을 보고 학생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시민위원으로 활동한다는 의미가 대체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첫 모임이 시작이 되고 시민위원이 생각하는 3·1 운동의 의미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마다 3·1운동을 받아들이는 의미는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공통적으로 그렇게 3·1운동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해낸 것이 대단히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3·1운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 되었다.

 

그 후에 이종찬님, 서해성님의 말씀들은 지루할 틈 없이 그분들의 말 속으로 나 자신을 빨려 들어가게 했다. 보통 내빈 소개, 연사 같은 것들을 할 때 말씀들이 너무 어렵고 흥미롭지 않아 집중하지 못하기 일쑤인데 이종찬님과 서해성님의 말씀들은 재밌고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귀에 쏙쏙 박히는 느낌이었다.

 

그 후에 김용만님이 시민위원이 해야 할 일을 소개시켜주었다. 바로 홍보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접었던 블로그를 다시 새로 시작하려고 한다. 이제 시민위원으로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으니 다음 활동부터는 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자랑스러운 시민위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왜 대학생보다 연령이 높은 사람들이 이 행사에 참여하는지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서울시에 대한 애정이 넘치고 여기서 듣는 강연이 너무 즐겁기 때문 아닐까. 나는 그들이 대단히 멋있게 느껴졌다. 나이가 들어서 자식들을 데리고 오면서 시민위원 활동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나이가 들어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애정을 계속적으로 가지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활동들을 많이 하고 싶다. 시민위원310 활동을 하면서 역사적 지식과 애국심이 마구마구 생겨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3·1운동은 통일정신이다

황원섭 시민위원

지난 6월 16일 오후 서울시청 본관 3층 회의실에서 개최했던 “3·1운동은 생일이다” 시민위원310 행사에 참석했었다. 그 동안 독립운동 관련 시민단체에 참여하고 있어 내년 3·1절 100주년을 뜻깊게 맞이하기 위한 시민위원 활동에 관심을 많았지만, 안국역 독립운동 태마 역 행사이후 처음 참석했다.

 

주최 측의 섬세한 준비로 행사는 매끄럽고 재미있게 진행되었다. 이종찬 이사장이 환영사를 통하여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의 의미를 설명하고, 대한민국은 1919년에 세워졌다는 역사적 논리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여 소위 ‘건국절 논쟁’이 이젠 끝났다는 확신을 얻었다.

서해성 총감독이 김구선생 귀국 장면을 설명하면서, 당시 연도가 태극기 하나가 없었고 출영 나온 환영객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얘기가 그 때의 정치적 상황을 암시하고 있어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3·1운동은 생일이다”라는 시민위원들의 생각을 소개하는 동안 3·1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비젼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지난번 시민위원310 사무국에서 “3·1운동 □□이다”라는 주장을 공모할 때 참여하려 했었는데 잠깐 잊고 넘어가 아쉬운 생각이 들어, 지금이라도 내 생각을 피력하려고 한다. “3·1운동은 통일정신이다”라는 내용이다.

 

3·1운동의 역사적 이상을 여러 각도에서 비쳐볼 수 있지만, 자유민주주의의 실현, 국제평화주의 추구, 한민족의 통일구현으로 이해하고 싶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상과 비전은 자주적 민족통일이라고 생각한다.

 

3·1운동은 일제 강점기에 국내외 살던 2,000만 동포가 모두 참여한 거족적인 민족운동이었다. 3·1운동을 모태로 수립한 상해 임시정부는 대한민국회의와 한성정부를 통합한 정부였고, 좌우익 등 모든 이념을 아우르는 통일정부였다.

 

사실상 민주주의나 국제평화주의는 어느 정도 실현되었지만 민족통일만은 아직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3·1운동이 지향해야 될 가장 중요한 비젼은 분단된 조국의 통일이라고 생각하여 “3·1운동은 통일정신이다.”라고 풀이하고 싶다.

 


3·1운동은 생일이다

 

시민위원 이재찬

 

지난 6.16일(토) 오후 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3.1운동은 대한민국의 생일임을 실감나게 하였다. 해가 바뀌면서 시민위원310의 참여와 역할은 빛을 발하고 있다. 개그우먼 조승희씨의 사회는 행사의 흥을 돋우고, 한국전통무용수 2인의 칼춤은 3·1운동의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인상을 주었다.

환영사에 나선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이종찬 위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어 매우 기쁘다.”고 하였다. 사실 한국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된 기념관이 없었으며, 다만 독립기념관, 백범김구기념관 등이 있었다. 반면 중국에는 상해, 항조우, 충칭 등 9곳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들이 세워져 있다. 이를 보면서 중국 정부와 중국인들이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임시정부에 대한 인식이 한국보다 크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 ‘3·1운동은 ○○이다!’라는 주제로 시민위원 310이 제출한 수많은 100년 메시지들은 3·1운동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내년 100주년 행사를 앞두고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어서 서해성 총감독은 3·1운동은 대한민국 근대사의 저수지라고 강조하였다. 민족사의 저수지에는 동학, 조선, 대한제국, 왕, 기생, 혁명, 공화정, 민주, 인권, 여성, 어린이, 미래도 다 들어 있다. 이제는 3·1운동이라는 발원지로부터 물을 대면서 새 역사를 개척해 나아가고 있다. 3·1운동은 군주제에서 공화정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어 대한민국 건국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그것이다. 3·1운동 100주년은 곧 대한민국 100주년이다.

3·1운동은 민족사의 거대한 생일이다. 2천년 이래로 우리 겨레는 이를 통해 완전히 새로 태어났다. 역사의 어떤 순간도 3·1운동 만큼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날 대한제국은 대한민국이 되었고, 장구한 봉건제는 민주공화제로 전환되었다. 왕토는 국토가 되었고, 백성은 시민, 국민이 되었다.

단재 신채호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하였다. 지난 날 얼룩진 역사를 돌아보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께는 경의를 표하면서 더 이상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역사를 남기지 않도록 3.1운동의 정신을 계승 발전하여 국민적 대동단결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다.

 

 


 

100년의 나라사랑을 되돌아본다

김기혁 시민위원

 

저는 이번 310 행사에서 3·1운동과 우리나라에 대해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시청에 도착해서 독립운동에 사용된 태극기를 바탕으로 만든 100년 배지를 받았습니다. 배지를 보며 타국에서 대한독립만세와 태극기가 담긴 깃발을 만들고 썼던 독립운동가를 생각하니 그 의미가 와닿았습니다.

사회자 조승희 님께서 조용하고 어색했던 분위기를 풀어주면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신칼무 공연에서 고운 한복과 전통 음악이 어우러져서 나오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참 좋았습니다.

처음에 ‘3·1운동은 생일이다’ 라는 제목을 보고 8·15 광복절이 생일이지 어떻게 3·1운동이 생일인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종찬 위원장님의 환영사를 들으며 중국에는 5곳이나 있는 임시정부 기념관이 우리나라에는 1개도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서해성 감독님은 3·1운동은 우리나라가 봉건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 왕토에서 국토로, 백성에서 국민과 시민으로 바꿔놓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왕의 통치를 받는 수동적인 역할이 아니라 국가의 주권자로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게 된 것도 3·1운동 덕분이라고 생각하니 새롭게 보였습니다.

영상 ‘대한민국 100년의 탄생’을 보며 3·1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가 독립할 수 있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 영상 ‘70년간의 비행’을 보며 김구 선생님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중국에서 힘들게 독립운동을 하다가 광복으로 인해 조국으로 올 때의 감회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제에게 현상금과 수배령이 걸려서 도망다니고 나라없는 민족이라는 서러움을 당하며 외롭게 독립의 희망 하나만을 붙들고 수십 년 동안 활동하신 것을 생각하니 참 감사했습니다.

그 후손인 저도 그 분들을 기리기 위해 홍보 활동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없었을테고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리며 살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시민위원이 참여한 ‘3·1운동은 ○○○이다’를 발표하는 시간에서 각자가 생각한 3·1운동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제비꽃다발’ 같은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와서 신기하기도 했고 하나하나가 다 의미를 담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김용만 단장님께서 사업을 소개하고 정다정 팀장님이 SNS 홍보와 뱃지, 우리밀 선물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사단법인 사람숲에서 탑골공원, 운현궁, 서북학회터 같은 역사적인 자리에 100주년 기념공간을 만드는 일에 후원하면 후원자 이름을 새긴다고 하는데 솔깃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때 우리밀 씨앗과 화분, 흙을 선물로 받았는데 잘 키워서 싹을 내고 밀도 잘 거두면 좋겠습니다.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 키우는 화분처럼 시민위원 310 활동도 꾸준히 참여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추모하고 기념하도록 힘쓰겠습니다. 내년 3·1운동 100주년 기념식 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모습을 그리며 다음 번 모임이 기대되고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