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47]<여의도공원 비행기 영상쇼 : 어느 소년 광복군의 비행>

높은 빌딩과 국회의사당 사이에 위치한 여의도공원은 언제나 많은 시민들로 북적입니다.
평화로운 금요일 오후,
잠시 후 이곳에 비행기 한 대가 이륙할 것입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C-47 비행기 전시관은 스크린으로 변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소년 광복군’의 비행이 시작됩니다.

 

 

미디어 파사드로 재탄생한 우리 독립운동 이야기가 C-47 비행기 위에서 상영이 되었는데요.
소년 광복군이 만주벌판을 누비고 무장투쟁을 벌이는 이야기를 보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여의도공원을 찾아주셨습니다.

씩씩하고 당차게 독립운동을 펼치는 소년 광복군은 1:1000으로 일본군과 맞서 싸운 김상옥 의사의 모습을 본따 탄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소년 광복군이 위기에 쳐했을 때 구해준 비행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조종사 권기옥 선생이기도 합니다.

 

 

1945년 8월 18일
1945년 11월 23일
광복군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타고 온 C-47 비행기에 우리 독립운동사가 펼쳐지고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이 띄워진 모습이 새삼 감격스럽고 뭉클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날 멋진 공연을 펼쳐 준 배우 심현서 군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김구 선생님! 김규식 선생님! …”

소년의 목소리를 듣고 C-47 비행기 안에서 독립운동가들이 하나하나 걸어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시민위원310 중 청소년, 청년으로 구성된 청색100 친구들이 임정요인 15인 역할을 맡아 걸어나온 것인데요.
실제 독립운동가가 살아돌아온듯 한 광경에 많은 시민들이 박수를 보내준 순간이었습니다.
청색100 친구들도 진지한 마음과 자세로 역할에 임해주었습니다.

어린이역사합창단의 압록강 행진곡을 듣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하나 둘 앞으로 나와 소감을 말하였습니다.
김구 선생, 이회영 선생, 조소앙 선생, 윤봉길 의사, 권기옥 선생, 김상옥 의사 등 후손들은 광복군 4명이 여의도비행장에 착륙한 날 밤, 일본군 대령이 따라준 항복주를 받은 것처럼
그 날을 재연하고 시민들과 함께 ‘항복주 퍼포먼스’를 재연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진출처 : THE FACT 포토(https://goo.gl/6jLDLa)

이날 김용만 시민위원310 단장은 윤경빈 선생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였습니다.
윤경빈 선생은 김구 선생의 경호를 맡으시는 등 광복군 총사령부에서 활동을 하며 1945년 11월 23일 C-47 비행기를 타고 환국하신 독립운동가이십니다.
서울시가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여의도공항에 처음 C-47 비행기를 가져다 놓았을 당시 참석하여 주셔서 ‘항복주’를 받으시고 비행기도 탑승해보셨습니다.

2018년 3월 8일 선생의 별세 소식은 우리를 안타깝게 하였는데요.
분명 <어느 소년 광복군의 비행>을 보셨다면 참 좋아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거대한 역사가 흘러가는 것을 느끼며 이럴수록 3·1운동 100주년도 잘 준비해야겠다는 각오를 해봅니다.

 

 

미디어 파사드 <어느 소년 광복군의 비행>이 마무리된 이후에는
<내가 만든 움직이는 100년> 공모전 시상식이 이어졌습니다.
항일 역사를 시민들이 직접 자기 손으로 표현하고 현재화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던 공모전이었습니다.
특히 역사에 관심이 높지 않은 젊은층의 참여가 높았으며 어린 아이까지 수상을 하여 뜻깊은 순간이었습니다.

어느덧 C-47 비행기가 여의도공항에 자리한 지도 햇수로 4년차 입니다.
많은 시민분들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다녀갔습니다.
독립운동가를 부르는 콘서트도 열렸고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상영하였으며 수 차례의 토크콘서트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우리 독립운동사 명장면을 모아 멋진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하여 미디어 파사드라는 장르로 시민들에게 선보였습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C-47 비행기 전시관을 통해 시민들에게 소개될까요?

아직까지 유일한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공간 C-47은 3·1운동 100주년 너머까지도 비행할 계획입니다.

 

2018년 개관 특별전 <움직이는 100년>

 

1945년 8월 18일 오후 2시 18분
토미건 기관단총을 겨드랑이에 메고 수류탄을 허리에 멘 사내 4명
광복군 정진대원 이범석, 김준엽, 노능서, 장준하는 미군 OSS대원과 함께 C-47 비행기에서 내렸습니다.
‘광복군 이름으로 장렬히 전투를 벌이라’는 김구 주석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무장한 채 조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야지만 한국이 참전국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미 패전을 선언한 일본이지만 병력은 강화되고 C-47 비행기 주위로도 탱크와 박격포가 배치되었습니다.
결국 전투는 벌이지 못하였고 이들은 다시 중국 산둥성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98일 뒤인 11월 23일
C-47 비행기는 다시 한번 더 착륙합니다.
김구, 김규식, 이시영, 엄항섭, 김상덕, 류동열, 유진동, 김진동, 안미생, 윤경빈, 이영길, 백정갑, 선우진, 장준하
환국하는 임시정부 요인 15명은 슬프게도 임시정부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김포비행장에 도착했습니다.
환영객 한 명 없는 쓸쓸한 환국이었습니다.

2018년 현재
C-47 비행기가 세번째 ‘착륙’ 하였습니다.

아쉽고 쓸쓸했던 앞의 착륙과는 다르게 이번엔
우리의 항일운동기 역사에서 빛나는 명장면들을 싣고 랜딩(landing)한 것입니다.
하얼빈에서 안중근이 쏜 뜨거운 총알, 눈 속에 숨어 두만강을 건너고 압록강을 건넜던 무장독립군,
이봉창 품 속 폭탄 2개, 홍커우공원에서 단상을 항해 폭탄을 던지는 윤봉길의 팔근육 등
생각만 해도 가슴 뜨거워지는 10개의 명장면을 움직이는 그림 이야기로 재탄생시켜 8월 16일까지 전시합니다.

광복7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가져다놓은 C-47의 3번째 개관식.
이날은 우당 이회영 선생 증손자 이철우, 구파 백정기 선생 증손자 백재승씨가 토크참여자로 함께 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99주년에 듣는 <이회영 이야기, 백정기 이야기>를 통해
생생한 독립운동 이야기와 식구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숨은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사실 우당 선생과 구파 선생은 아나키즘에 영향을 받았으며
엄밀히 말한다면 임시정부와는 다른 기조를 가지고 활동하셨습니다.

그러나 조직으로서의 임정에는 함께하지 않았을지언정 조국의 독립을 위한 활동에는 한마음 한뜻으로 활동하셨던 분들이기에
임정수립일, 두 자손들이 임정기념공간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모든 독립운동가가 추구하는 체제가 달랐다 하더라도 독립이라는 같은 목표를 위해 모든 노력과 역량을 집결하였습니다.
우당 선생, 구파 선생 역시 임정과 다른 길을 걸었다해도 스타일의 차이일 뿐 도달점은 같았습니다.

우당 선생은 일본 경찰의 고문 끝에 1932년 11월 17일 돌아가셨습니다.
이 날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있는 그날, 을사늑약이 체결된 날(1905년)입니다. 묘하게 일치한 두 날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구파 백정기 선생 증손자 백재승씨는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어떻게 살았냐는 질문에
“독립운동가 후손보다 나만의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어쩌다보니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셨더라. 아마 나라 잃은 울분을 못참으셔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활동하신 것 같다.”라며
“세월이 흐르면서 할아버지 삶에 대해 더 알려고 한다. 내가 만약 당시 할아버지 입장이었다면 이렇게 독립운동 활동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이 자리가 나에겐 아주 의미가 깊다. 이런 자리가 더 자주 마련되었으면 좋겠다.”고 답했습니다.

개관식에 참석한 시민들의 열기도 뜨거웠습니다.
한 시민께서는 “우당 선생과 구파 선생 등에 대한 정보 없이 참석하였다. 그러나 이 토크를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절실함을 알았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독립된 나라에서 공기와 같은 자유를 누리며 삽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문득 깨닫습니다.

아, 우당이 있었지. 구파가 있었지. 백범이 있었지.
그래 독립운동이 있었어!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한글을 마음껏 쓰고 말하는 나라,
곤니찌와가 아닌 안녕하세요? 아침 드셨어요? 로 안부를 건네는 나라,
월드컵 한일전에서 마음껏우리나라를 응원하고
독립하지 못한 나라걱정에 밤 잠 설치지 않아도 되는 나라.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독립운동가들이 보기에 현재 우리는 잘 살고있는 것처럼 보일까요?
3·1운동 100주년을 불과 몇개월 앞둔 지금이 답을 구해야할 때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공간 C-47 비행기 전시관 2018년 개관 특별전

움직이는 100년

 

전시기간 : 2018년 4월 11일(수) – 8월 16일(목)
관람시간 : 09:00 – 18:00
관람시간 : 09:00-12:00 & 17:00-21:00 하절기(7월 1일 – 8월 31일) 매주 월요일 휴관
전  시  장 : 여의도공원 내 광장(문화의마당)
전  시  장 :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공간 C-47 비행기 전시관
주최/주관 : 서울특별시,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비행기 극장 – 가을에 만나는 단편 애니메이션 3편, 그리고 3가지 질문

 

 

가을이 찾아온 여의도공원에 작은 영화관이 오픈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공간인 C-47 비행기 안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찾아온 것인데요.

 

 

  

10월 24일부터 11월 5일까지 총 3편의 애니메이션이 오전 11시, 오후 3시에 공식적으로 연속 상영되었습니다.
3편 모두 ‘전쟁’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진 작품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제작된
<끝나지 않은 이야기>(한국, 감독 안희덕, 2013년, 16분)
한국사 100년은 한 여성의 삶을 어떻게 관통해 갔을 지 질문을 던지는
<아름다운 날>(한국, 감독 장윤정, 2015년, 9분)
전쟁터에서 모든 총구는 결국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이 아닌지 대사 없는 영상으로 국제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Confusion Through Sand>(미국, 대니 매든(Danny Madden), 2013년, 12분)까지.

 

모두 의미있는 작품인데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공간인 C-47비행기 안에서 보아서
더 특별했던 작품들이었습니다.

 

 

 

여의도공원에 비행기가 있는 것이 신기하여 입장한 시민들도
뜻밖의 애니메이션 상영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시민들은 진지하게 애니메이션을 시청하였습니다.
전쟁을 겪은 세대, 겪지 않은 세대가 비행기 안에서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누군가는 넓은 공원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비행기가 생뚱맞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의도공원에 C-47 비행기는 꼭 가져다 두어야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쟁 속에서 친구를 잃고 가족을 잃고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자기 목숨을 잃을 각오로
C-47 비행기를 타고 착륙한 곳이니까요.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공간이니까요.

그런 공간에서 전쟁에 관한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았던 순간이,
비행기극장을 찾아주신 434명의 시민들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비행기극장은 내년에 다시 찾아옵니다.
고맙습니다.

[광복비행818] C-47콘서트 – 시민참여후기

72년 만에 광복군을 위한 노래가 울려퍼졌습니다.
커다란 C-47 날개 아래서 진행된 [818 광복비행 : C-47 콘서트]
많은 시민분들께서 참석해주시고 참여후기까지 보내주셨습니다.
그 중 네분의 글을 소개합니다. 소개되지 않은 시민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임춘경 시민님

광복군 정진대가 C-47 수송기를 타고 귀국 시, 도착한 곳이 여의도 그 당시 여의도 공항이며, 8월 18일이므로 그 날짜, 그 장소에서 그 날을 기리며, 또 C-47 비행 전시관 앞에서 행사를 진행하게 된 것은 좋은 의미로 다가왔다.

 

72년 전 그 당시의 벅찬 감동을 다 상상할 수는 없으나, 빼앗긴 조국에 대한 심오한 갈망과 그동안의 많은 사건, 많은 동지, 우리 민족들 등이 한껏 떠오르며 또, 그 당시 현 상황과 미래에 대한 대처 및 계획 등등으로도 묘한 감정도 있었을 것이다.

 

공군 간부 및 역사 자료 관련 담당자들에게 듣는 C-47 비행 관련 그 당시 항일역사 이야기, 서해성 감독님의 이야기들도 듣게 되니, 더욱 그때 상황을 이해하려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고 흥미로웠다.

 

우리 대한민국 공군의장대와 공군군악대, 그리고 이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함께 불렀던 항일음악, 예를 들어, ‘신독립군가’도 배워 함께 부르며 잠시나마 그 항일투쟁 독립군들을 떠올려 보았다.

 

대한민국 공군 군악대, 의장대, 역사어린이합창단의 합창과 공연은 좋았고, 용문고 밴드부도 씩씩하고 크게 울려 퍼짐이 듣기에 좋았다. 그 외는 “광복군의 함성, 시민합창으로 울려 퍼지다.”라는 주제에 대한 개인적 기대가 커서인지, 그 점에 대하여는 아쉬움이 있다.

 

그 행사일에 C-47 비행기 전시관을 둘러보지 못하여 추후 방문하려 한다.

 


 

시민들의 독립군가로 환생한 “광복비행818”

최용수

“보았노라 우리 연해의 섬들을/ 왜놈의 포화 빗발친다 해도/ 비행기 부서지고 이 몸 찢기워도/ 찢긴 몸 이 연안에 떨어지리니/ 물고기 밥이 된들 원통치 않으리/ 우리의 연해 물 마시고 자란 고기들/ 그 물고기 살찌게 될 테니”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 정진대원으로 C-47 수송기를 타고 귀국 시 서해바다 상공을 날아올 때 이범석 장군이 쓴 글이다.

< 광복군/임시정부 인사들이 환국 시 탔던 C-47, 대한민국임시정부 마크가 선명하다>

 

해방 3일 후인 1945년 8월 18일 새벽 중국 시안(西安)비행장을 이륙한 C-47 미군 수송기가 이날 오후 경성비행장(현 여의도공원)에 내려앉았다. 비행기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진대(挺進隊, 선발대) 이범석, 김준엽, 노능서, 장준하가 타고 있었다.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독립될 새로운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자 미군 ‘사절단’과 함께 날아온 것이다. 그러나 일본군의 저항과 미군 사령관의 요구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중국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1945.11.23에는 임시정부 주석 김구, 국무위원 이시영 등이 이 비행기로 귀국한다.

 

지난 8월 18일(금) 저녁, 바로 그 비행기 앞에서 광복군의 함성이 시민들의 노래로 울려 퍼진 “광복비행818, C-47 콘서트”가 열렸다. 여의도공원 남쪽에서 비상하듯 머리를 든 C-47 수송기,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서울시에서 공군과 협조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공간으로 설치한 전시관이다. 해방 당시 경성비행장 활주로에 착륙하던 그 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모습이다. 현재까지 66,000여 명의 시민들이 전시관을 찾았다고 한다.

 

이날 콘서트는 C-47 수송기 앞 야외무대에서 펼쳐졌다. 신독립군가, 최후의 결전, 용진가 등 공군군악대의 공연과 의장대의 시범으로 시작된 C-47 콘서트는 시민들이 부르는 항일 독립군가와 광복군에 대한 역사 토크로 진행되었다. 콘서트의 마지막은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과 연주자, 독립유공자 후손, 공군군악대/의장대 장병들이 함께 부른 독립군가 ‘압록강 행진곡’이 대미를 장식했다. 조명을 받은 C-47의 위엄은 환국(還國)의 의미를 되살려 주는 듯했고, 시민들이 다시 부른 독립군가는 광복군의 함성이 되어 여의도에 울려 퍼졌다.

 

< ‘광복군 행진곡’ 등을 연주하고 있는 용문고 밴드부 ‘소나기’ 멤버들 연주 모습 >

 

콘서트는 3·1 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33인 중 한 사람인 배우 정동환 씨가 맡았다. 함께 부른 항일 노래는 연어초밥의 ‘압록강 행진곡’, 필로스의 ‘선봉대가, 최후의 결전’, 밴드추억의 ‘신독립군가’, 용문고등학교 밴드부 소나기의 ‘광복군 행진곡, 앞으로 행진곡’ 그리고 역사를 노래로 만들어 배운다는 역사어린이합창단(30명) 순으로 이어졌다. 노래 사이마다 역사 토크가 진행되었다. ‘왜 여의도인가?’ ‘왜 우리는 독립군가를 배우지 못했나?’를 주제로 서해성 총감독과 독립유공자 후손, 시민들이 함께한 ‘광복비행818 토크(Talk)’였다.

 

< 독립운동가 김구, 백정기, 장준하 선생님들의 후손들이 참석한 역사 토크 진행 모습>

 

“국내 진공을 준비하던 광복군은 일본이 예상 밖으로 빨리 항복해버려 난감했다. 우리가 참전하지 못하고 남의 힘으로 해방된다면 많은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 우려했다“ 광복군 장준하 선생의 증언이다. ​그 우려가 ‘남북분단’이란 이름으로 현실화되어 지금 우리를 고통에 시달리게 하는 것 같다. 서울시 복지본부장(김용복)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서울시는 3·1운동을 기념할 수 있는 상징조형물 건설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착실히 추진할 계획이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렇다, 3·1운동 100년을 기념하는 것은 다가올 대한민국 100년을 준비하는 것 아닐까.

 

“우리는 한국 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이날 우리는 독립군가 ‘압록강 행진곡’을 힘차게 합창했다. C-47 수송기를 타고 경성비행장에 착륙하던 광복군 정진대의 그 감흥이 노래로 다시 살아났다. 이날 밤 C-47 콘서트는 ‘광복비행818’이 시민들이 부른 노래로 환생한 아름다운 축제의 밤이었다.

 


임미숙 시민님

콘서트 참여를 위해 오후 3시에 강원도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을 했다.
지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밴드, 카스, 페북에도 알리고 모임 하나는 이날로 정하여 콘서트를 함께 참여했다.

 

콘서트가 시작되고 공군 군악대의 씩씩한 독립군가가 여의도 광장에 울려 퍼지니 그 기세가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듯하여 가슴이 벅차고 신명이 났다. 플루트와 기타연주로 독립군가를 듣고 거리공연가들의 색다른 독립군가와 청소년 (용문고)밴드의 열정적인 록 같은 독립군가는 요즘 청소년들이 좋아할 장르로 부를 수 있어 더 색다르게 느껴졌다.

 

가장 가슴에 오래 여운이 남는 팀은 마지막을 장식한 어린이 역사합창단으로 어린 학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신독립군가를 부르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합창은 마치 그 시절 우리의 독립군 아니 모든 국민이 한 목소리로 소리치며 불렀을 것 같은 회상을 하게 했다. 아직도 뇌리에서 들리고 입으로 되뇌는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에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아가세”

 

나는 그 시절 태어났으며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본다.
당연히 무엇인가 하려고 했을 것이다. 앞장서지 못하면 조력자로 도와주는 역할이라도 했을 것이다. 현재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국민으로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선조들이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더 이상 앞으로 절대로 지난날의 수난을 다시 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의 지난 역사를 바로 알고 배우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디딤돌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광복비행 818 콘서트처럼 시민들과 만날 기회가 많아지면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질 것이며 청소년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는 독립군가 경연대회도 기획을 하여 매년 행사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김갑석 시민님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C-47 비행기 전시관 앞 무대에서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33인으로 활동하시는 정동환 선생님의 사회로 감동적인 무대를 서울시민들에게 선사하였습니다. 본 행사를 준비한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100주년 기념사업에 감사드립니다. 아쉬운 점이 있지만, 성황리에 개최하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대한민국 공군 군악대, 의장대, 역사어린이합창단과 함께하고 밴드추억, 연어초밥, 필로스, 용문고등학교 밴드부 소나기 등이 출연하여 열창을 보내주신 것에 비하여 서울특별시민들의 참석과 관람인원수가 조금은 부족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고 있습니다.

 

이번 행사를 서울시 홈페이지와 서울시 교통방송, 서울교통공사를 통하고 25개 구청 지방자치단체장과 의회, 구청발행신문 등을 통하여 광복비행818 C-47콘서트행사를 홍보하여 더 많은 시민이 공연 관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으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홍보를 통하여 서울특별시민들이 많이 참여함으로써 지금 진행하고 있는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100주년 서울특별시 기념사업이 서울특별시민들과 함께 더 나가서는 대한민국 전체 국민과 국외동포들까지 함께 동참하는 사업이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계속 진행하는 행사에 시민위원으로 참석을 하겠습니다.

[광복비행818 : C-47콘서트] 광복군의 함성, 시민합창으로 울려퍼지다

 

하늘로 뻗어나가는 금융회사 건물 사이 서울시민의 쉼터 여의도공원이 있습니다.
여의도공원이 원래 공항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많으실겁니다.

 

1945년 8월 18일
한국 광복군 정진대 대원이 이곳에 착륙하였습니다.

이범석·김준엽·노능서·장준하
이 네 사람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명을 받고 장렬히 전투를 벌이기 위해 조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야 한국은 참전국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안타깝게도 전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새벽 1945년 8월 19일 오전 5시
광복군은 여의도비행장을 떠나 중국 산둥성으로 향하는 C-47기 안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려고도 했지만
그대로 서해바다 위를 날아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정확히 72년이 흐른 2017년 8월 18일
대한민국 공군 의장대와 군악대, 역사어린이합창단, 공연 참가자 그리고 시민이 모여 광복군을 위해 모였습니다.
그들이 타고 온 C-47 비행기 앞에서 독립군가를 부르기 위해서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시작으로 공군 의장대와 군악대의 멋진 퍼포먼스가 이어졌습니다.
선임에 대한 존경과 위로를 담아 기상넘치는 모습을 보여준 그들에게 시민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마음이 울컥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못다한 광복군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리길 바라며 공연을 지켜보았습니다.

최연소 참가자인 역사어린이합창단원들은 공군사관학교생도들에게 3·1운동 만세깃발 뱃지를 달아주는 뜻깊은 시간도 마련되었습니다.

시민 음악단의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날 사회는 국민배우 정동환님께서 진행해주었습니다.

처음 독립군가를 불러보는 참가자들은 남다른 감회를 풀어놓았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노래에 어떻게 공연을 풀어야할 지 막막했지만 독립군이 된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하기도 했고
오히려 신나고 씩씩하게 불러보고 싶었다는 참가자도 있었습니다.

역사어린이합창단의 신독립군가 합창으로 모든 공연은 마무리되었습니다.
C-47 비행기 날개 아래서 가장 맑은 목소리로 독립군가를 부르는 장면에
모든 시민은 카메라를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군 군악대의 반주로 한번 더 신독립군가가 울러펴졌습니다. 이번에는 시민들이 함께 합창했습니다.

이날 참석하신 구파(鷗波) 백정기 선생 후손이신 백재정님께서는 이런 자리가 물론 뜻깊지만
더 본질은 친일 청산과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 말씀 그대로 음악교과서 첫 페이지에 독립군가가 하루 빨리 실리길 바라봅니다.

[다큐멘터리] 70년동안의 비행

2015년 광복 70주년 서울시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여의도공원(옛 여의도비행장)에 C-47기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당시 비행기 안에서 상영되었던 다큐멘터리 영상을 공개합니다.

C-47 비행기는 여전히 여의도공원 내에 있으며
새로운 영상과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목소리 : 장호권 (장준하 선생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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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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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공간 C-47 오픈식


 

상해임시정부 수립기념일과 같은 4월 13일.
광복군과 임정요원들이 탔던 비행기와 같은 기종이 서울 여의도공원에 놓여있습니다.
국기 게양대와 농구대 옆에 놓여있는 이 비행기는 2015년부터 서울시 광복7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시민들과 만났고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2019) 조금 더 젊고 활기찬 모습으로 단장했습니다.

<대한민국 100년의 탄생>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번 개관행사에서는 우당 이회영 선생 손자 이종걸(국회의원), 백범 김구 선생 증손자 김용만(회사원)이 들려주는 ‘나의 할아버지의 항일운동 이야기와 생생한 임시정부 환국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3·1운동의 시작과 그로 인해 탄생한 임시정부의 여정을 담은 <대한민국 100년의 탄생>다큐멘터리도 함께 시청했습니다.

올 한해 C-47기념관에서는 여름 밤 비행기 콘서트, C-47기 영화제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도심 한가운데 마련된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공간’이라는 소중한 곳에서 시민여러분들의 참여로 뜻깊은 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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