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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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도 시종기 낭독회 "우당의 죽음, 그리고 해방 이후 독립운동가의 쓸쓸한 삶"


11월 17일 제법 바람이 찬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위원310 위원분들이 모인 이곳은 덕수궁 중명전입니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강제적으로 체결된 곳. 그리고 그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헤이그 특사를 파견했던 장소도 바로 이곳 중명전입니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을씨년(乙巳年)스러운 오늘, 세 번째 <서간도 시종기> 낭독회에 앞서 덕수궁 중명전을 둘러보며 그 의미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중명전은 본래 황실의 서적과 보물을 보관하기 위해 세워졌지만 덕수궁에 큰불이 나면서 고종이 머무는 편전이 되었다고 합니다. 파란만장한 세월을 거쳐 복원된 후 누구에게나 공개되고 있지만 평소에는 개방되고 있지 않은 2층도 오늘만은 특별히 개방하여 낭독회를 진행했습니다.

세 번째 낭독회를 위하여 특별한 분들이 참석해주셨습니다. 이은숙 선생의 후손이신 이종찬 위원장 부부가 참석하시어 낭독에 함께 해주셨고,  문화유산국민신탁 김종규 이사장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의 박경목 관장이 낭독자로 함께 해주셨습니다.

첫 낭독자는 이종찬 위원장이었습니다. 11월 17일 오늘은 을사조약 체결일이기도 하지만, 우당 이회영의 서거일이기도 합니다. 우당은 전 재산을 팔아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한 순간부터 항일 독립운동을 단 한순간도 쉬지 않았습니다. 우당은 을사늑약 체결 후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규탄 운동을 벌이고, 고종에게 일본의 만행을 알리기 위한 헤이그 특사 파견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자리가 고종이 밀서를 하교하신 그 장소인 것입니다.  선생이 뤼순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순국한 날을 아내 이은숙 선생의 심정으로, 손자 이종찬 위원장의 목소리로 함께 낭독하니 그 슬픔과 황망함이 더욱 가까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우당이 세상을 떠나고 남은 가족들의 삶도 녹록지 않았습니다. 아들 규창은 수감 생활 중 옥중 투쟁으로 13년형이 추가되어 영천형무소(현재의 서대문형무소), 경성형무소, 광주형무소를 전전하며 옥살이를 계속했고, 이은숙 선생은 그런 아들을 옥바라지하며 고달픈 나날을 이어갔습니다.

당시 옥살이를 하게 되면 무엇보다도 고되고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 배고픔이라고 합니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눈에 보이는 대로 집어먹던 수감자들은 항상 복통이나 소화 불량 등에 시달렸고, 심지어 아교나 가죽을 씹어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굶주림과 외롭고 쓸쓸하기 그지없는 독방 생활을 모두 견뎌가며 십여 년을 보낸 아들 규창의 나날을 떠올리면 독립운동가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는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시민위원310 위원분들도 낭독에 참여해주셨습니다.  한 분 한 분 지금 이 순간만은 이은숙 선생이 되어 그때의 심정은 어떠했는지,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 소리 내어 읽음으로써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 낭독해주신 시민위원분들께는 이은숙 선생의 후손인 이종걸 의원의 친필 손글씨가 쓰여있는 <서간도 시종기> 책을 선물해드렸습니다. 이 책을 펼 때마다 우리가 함께 책을 읽었던 지금을 떠올리며 우당 이회영과 영구 이은숙,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 의미 깊은 선물이 되길 바라봅니다.

우리는 지난 6월부터 세 번에 걸쳐 이은숙 선생의 자전적 회고록 <서간도 시종기>를 함께 읽어보았습니다.

낭독을 통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앞장선 우당 이회영 가문의 독립운동뿐 아니라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재조명해 보았습니다. 독립운동가의 뒤에서 배우자라는 수식어에 가려졌던 여성 독립운동가의 일생을 되돌아보고, 항일이 중심이 아닌 생활이 중심이 된 독립운동도 만나보았습니다.

다 같이 소리 내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모두가 함께 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일제강점기 발행했던 독립신문은 많은 부수가 팔리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 백성에게 널리 퍼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 같이 모여 독립신문을 함께 낭독하고 그 뜻을 전파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서간도 시종기>를 낭독한 것은 그 뜻을 공유하고 널리 퍼트리기 위한 것입니다. 조국 독립을 위해 싸워야만 했던 역사를 기억해주세요. 우리의 이 뜻은 3·1운동 100주년까지 널리 퍼져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