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6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
일제 치하, 여성 98명 총검에 의해 집단 처형
39인, 대한독립선언서 발표.. 민주·평등 선언
일제 심장부 도쿄서 ‘2.8독립선언문’ 발표
대한독립만세! 들불처럼 번진 3·1운동
유관순, ‘아우내장터 만세시위’ 주동자로 체포
‘대한민국’ 국호 탄생!
19.04.11 상하이임정수립.. 대한민국뿌리
신흥학교→신흥무관학교.. 독립운동 열기 고조
민족을 하나로! 상하이임시정부로 통합
‘백발 투사’ 강우규, 신임 총독 등에 폭탄투척
독립무장부대들 첫 연합작전 ‘봉오동 전투’ 승리
청산리 전투, ‘설욕’ 벼르던 일본군에 패배 안겨
김익상, 대낮에 총독부 유유히 진입..폭탄투척
김상옥, 1000여명의 경찰과 총격전.. ‘자결’
다시 타오른 민족운동 불길.. 6·10만세운동
나석주, 조선 수탈의 심장 ‘동척’에 폭탄 투하
광주 학생독립운동, 한국여고생 희롱으로 촉발
최초 고공 항일 투쟁.. 강주룡, 을밀대에 오르다
이봉창, 일왕에 폭탄 투척.. 현장서 체포돼
윤봉길 ‘상하이 폭탄 투척 의거’.. 日군정 대타격!
‘부민관 폭파 의거’, 광복 전 마지막 의열 투쟁
아! 광복!
광복군 태운 C-47수송기, 여의도활주로 착륙
임시정부 요인 15인, 27년만의 ‘쓸쓸한’ 환국
김구, 경교장서 안두희 총격 피습으로 서거

시민위원310 참석후기


올해도 3·1운동 100주년 행사와 강연에 많은 시민위원310 위원이 참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많은 분들이 참여후기를 보내주셨습니다.

기억을 되살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때의 마음과 경험을 단단히 다지는 일일 것입니다.
여기 시민위원310 후기를 소개합니다. 함께 읽으며 그 날의 배움과 감동을 되살려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백년을 향하여

최다연 시민위원310

폭염의 연속이었던 한여름 밤 여의도에서 만난 어느 소년 광복군의 비행.

어린 두 아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아직은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이고 삼일운동, 독립운동, 국치 등을 모를 나이지만 이런 활동들을 통해서 아이들의 마음속에 나라에 대한 생각과 우리 역사에 대한 생각들이 생겨나고 미래를 이끌어갈 올바른 역사의식의 씨앗이 심어질 거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영상쇼를 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오늘 비행기에 대해 간단하게 알려주고 영상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평소 ‘헬로 카봇’에 푹 빠져있는 작은 아들이 영상 속 소년 광복군의 모습을 보고는 ‘헬로 카봇’의 주인공 남자아이 ‘차탄’ 같다고 했다. 그만큼 친숙한 존재로 다가왔다는 의미이다.

무겁지 않지만 장엄하고 가볍지 않지만 친근하고 어렵지 않지만 쉽지 않고…… 행간에는 많은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나름의 의미로 다가왔을 영상쇼. 대한민국의 의미를 알고 난 이후 마주하니 덥고 지친 한여름 대지를 적시는 빗줄기처럼 반가웠다.

 

 

내 옆의 독립과 친구 맺기

김기혁 시민위원310

평소 토론을 많이 해보지 않았고 주제인 독립운동에 대해서 잘 몰라서 조금은 긴장했었습니다.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영상 ‘어느 소년 광복군의 비행’ 을 시청했습니다. 여의도공원에서 C-47 비행기를 통해 감동적으로 봤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또 보니 국내와 해외를 넘나들며 치열하고 꿋꿋하게 활동한 독립운동가의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토론의 주제로 ‘윤봉길, 안중근, 이봉창은 애국자인가 테러리스트인가’를 선택했습니다. 김용만 단장님의 진행으로 조원들과 인사를 하고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어느 위원님은 폭탄 투척, 저격 등의 방법은 그 목적이 공포와 혼란이기 때문에 테러와 차이가 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위원님은 우리는 약소국인데다가 고립됐었기 때문에 과격한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 결과로 우리나라의 독립의지가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며 정당한 활동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개인의 저항이 아니라 제국주의 대 반제국주의의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제국주의는 피지배민족의 침략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저항과 불복종에 막혀서 오래갈 수 없으며 독립운동은 그 일환이라고 했습니다. 위원님들이 말했던 주장들을 전지에 간략하게 적어 발표할 내용을 만들었습니다. 조별 주재자님들이 옆에서 도와주셔서 덕분에 수월하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달아올랐던 조별 토론이 끝나고 전체 발표와 피드백을 했습니다. 여성독립운동가, 친일 예술, 위안부 협상, 항일 유적 관리, 우리말 속 일본어에 대한 발표를 했습니다. 주제는 각자 다르지만 어두운 과거의 고통이 계속 되풀이 되고 있는데 지금부터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바꿔서 밝은 미래로 나아가자는 내용이었습니다. 독립운동은 멀리있는 100년 전 무겁고 딱딱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까지도 살아 숨쉬며 일상생활에서 피부로 와닿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 분들의 뜻과 정신을 계승하고 새롭게 발전시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합니다. C-47 비행기 영상에서 과거의 독립운동가가 미래에서 온 소년에게 빛나는 별을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전문가 선생님들이 발표 내용을 짧게 정리하고 위촉장 수여식 후에 행사는 마무리됐습니다. 토론은 소수의 발제자와 진행자가 주관하면서 청중들이 질문을 하는 형식이 아니라 참가한 시민들이 모두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독립운동을 돌아볼 기회가 없었는데 독립 정신을 이어갈 방법과 그것을 어떻게 생활 속에서 실천할 것인지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서해성 감독님 및 김용만 단장님, 전문가 선생님들, 1기 위원님, 청소년 위원님들 모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 시민들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이웃들과 함께할 독립운동 행사가 기대됩니다.

 

 

최다연 시민위원310

<시민토론캠프>에서는 시민위원들이 모여 6가지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나는 6개의 주제 중 ‘친일예술, 예술인가 친일인가’ 주제에 참여하였다.

* 예술이 아니다 – 예술은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재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없이 정치적 도구로 기꺼이 이용되었다.
* 예술이다 – 시대의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예술이다. 그렇지만 친일행위다. 나쁜 형태의 예술로 소개하고 교육용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 토론 주제가 잘못된 것 같다. ‘친일 예술, 예술인가? 예술이 아닌가?’로 바꾸는 게 좋겠다.

시민위원들과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누다보니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 시절 수많은 독립운동가분들과 이름 없는 영웅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의 열띤 토론을 마무리 하고 나머지 주제 토론에 대한 결과를 들었다. 모든 토론 주제를 관통하는 중심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였다.
모두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이었고, 그래서 더 알아야 하고, 알려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올해 시민위원으로서의 활동 목표를 ‘알리는 것’으로 정했다.

올해는 평일 일과시간 행사가 많아 아쉽지만 참여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이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백년을 열기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열심히 알리고 있다. 올해 나의 활동 목표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나온 백년이 비통하고 굴곡진 백년이었다면 새로운 백년은 평화와 번영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대한 독립을 위해 애쓰신 수많은 선조들의 피와 땀에 보답이 되는 백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유재훈 시민위원310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2015.12.28일 日本외상과 韓國 외교부 장관간에 정부합의가 이뤄졌으나 핵심사항인 일본의 진정어린 사과가 이뤄지지 않아 한국내에서 위안부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분들과 많은 국민들의 반대 여론에 직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정부간 합의 당시 일본 외상은 일본의 사과가 정부를 대표하는 일본총리의 사과라고 했으나 총리가 직접적인 발표를 하지 않아 사과의 진정성에 많은 한국 국민이 의심을 품게 되었다. 또한 10억엔의 위로금도 배상금이 아닌 보상금 성격으로 몇 단계의 관련 단체를 거쳐 핵심사항인 일본의 사과가 더욱 의심받게 되었다.

위와 같은 일본의 비이성적 태도에는 위안부 문제를 인정시,국민들 특히 청소년등 후손이 부끄러운 과거를 알게 되므로 이를 은폐하고자 과거사를 계속 날조하고 있다. 일본 아베총리의 외할아버지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총리로 1급 전범이나 사실상 처벌을 받지 않았고 위안부 문제 인정시 외조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되므로 이러한 배경이 아베 총리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나의 개인 생각으로는 역사를 왜곡하는 민족은, 현실도 부정하고 미래도 뒤틀린다는 과거의 사례에서 큰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이재찬 시민위원310

이날 행사에는 독립운동가 후손 분들과 많은 시민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독립운동가 원종린 선생의 후손인 동아대학교 국제학부 원동욱 교수의 사회와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서해성 총감독의 소개로 심포지엄이 시작했다.

제1주제 「세계 망명정부, 임시정부 연구」에서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임정 승인 문제는 국제법적이라기보다 국제정치적인 것이라고 봤다. 강대국 힘의 정치(power politics) 논리에서 중국·미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역학관계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어 2차 대전 이후 현대 국제법에선 인민자결권이 본질적 원칙이기 때문에 임정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며 “건국의 본질은 법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해영 교수의 주제에 대한 지정토론은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진행했다. 임시정부의 외교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승인 받지 못한 이유와 연합국 승인 이후 임시정부 처리과정 등을 질문했다.

제2주제 「상해 임시정부 활동 연구」에서 쑨커즈(孫科志) 중국 푸단대 교수는 “임시정부는 독립운동과 더불어 중국 혁명 활동에도 적극 가담했다. 특히 항일전쟁에 가담한 점은 중국 근대사, 한중관계사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밝히면서 임시정부가 한국 독립을 위한 초석을 다졌다고 평가했다. 정부 수립 후 외교활동, 무장투쟁, 의열투쟁을 통해 세계에 한민족의 독립 의지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쑨커즈 교수의 주제에 대해 윤대원 서울대 교수는 지정토론자로서 1920년대 이후 중국 관내를 벗어나지 못한 상해 임시정부의 위상과 현재 중국 대만과의 관계를 예시로들며 법통성 문제에 관하여 질문했다.

제3주제 「노령 임시정부 활동 연구」에서 박환 수원대 교수는 1919년 대한국민의회라는 정부조직을 만들어 활동한 러시아 임시정부의 성립과 활동에 대하여 설명했다. 1919년 대한국민의회라는 정부조직을 만들어 활동한 러시아 임시정부의 성립과 활동에 대하여 설명했다. 러시아지역의 3.1운동 발발에는 한인신보, 한족공보 등 한인신문들의 역할이 컸다. 만주지역의 간도와 훈춘지역의 대표들까지 참여한 대한국민의회는 러시아혁명의 영향을 받아 소비에트 식으로 조직되어, 의회기능뿐 아니라 행정부 기능도 포괄하고 있었다.

이날 서해성 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총감독은 인사말을 통해 “세계 망명정부와 임시정부 심포지엄은 오랫동안 국내에 한정되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인식과 시야를 세계로 넓혀 생각해보고자 마련한 자리다. 이는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학술 토론회다”라며 의의를 설명했다. 서 감독은 이어서 “프랑스 망명정부가 종전 뒤 어떻게 법통을 재창조해냈는지, 베트남 임시정부가 해방 뒤 어떻게 법통을 이어갔는지 살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가치와 위상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4시간에 걸쳐 진행된 국제심포지움은 3·1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과 국제적 승인의 당위성을 실감했다.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의 집단적 자유의지는 이를 실천할 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