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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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도 시종기 낭독회 "독립운동가 가족들의 삶"


9월 18일, 서간도 시종기 두 번째 낭독회가 열린 장소.
이곳은 어떤 공간일까요?

바로 종로구 통인동에 위치한 ‘우당기념관’입니다.
오늘 이 곳에서 이은숙 선생의 <서간도 시종기> 두 번째 낭독회를 진행할 것입니다.
주제는 “독립운동가 가족들의 삶”입니다.

같은 날 오전 <안국역 다시 문 여는 날>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많은 시민위원310 위원분들은 오전 행사까지 마치고 오후 낭독회까지 참석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은숙 선생의 후손이신 이종걸 의원도 안국역 행사에 이어 낭독회까지 참석해주셨습니다. 지난 첫 번째 낭독회에도 부인과 함께 낭독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 낭독회 낭독자로는 아주 특별한 분들을 모셨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 농성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인 강주룡 선생에 대한 책을 쓴 <체공녀 강주룡>(한겨레출판, 2018)의 저자 박서련 작가.
12년이라는 시간동안 해고 노동자로 긴 싸움을 해나갔던 김승하 KTX 승무원 지부장.
청소 용역 미화원들의 권리를 위해 활동해오신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김주실 전 고양지부장.

모두 이은숙 선생처럼 ‘여성’과 ‘노동’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계신 분들입니다.

<서간도 시종기>는 독립운동가 가족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매우 자세히 담고 있는 책입니다. 이은숙 선생의 손자인 이종걸 의원의 말에 의하면 아들이 만들어준 공책 위로 이은숙 여사는 100% 기억에 의존해 당시 삶을 적어내려가셨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은숙 선생은 한번도 학교를 다니지 않으셨던 분이라고 합니다. 이는 구어체로 생생히 담겨있는 <서간도 시종기>를 태어나게 했습니다. 항일이 중심이 아닌 생활이 중심이 된 독립운동을 <서간도 시종기>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손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글을 쓰셨던 이은숙 선생은 하루일과가 끝난 아들에게 “얘야, 오늘은 이만큼을 썼단다.”라고 자랑하셨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의 말에 “아이구 잘하셨습니다.”라고 답하였다고 합니다.

조선 제일의 부자이자 사대부집안인 우당 이회영과 6형제는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독립운동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웠습니다. 이곳에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무술을 익히고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해나갔습니다. 그리고 6형제 중 2명은 굶어 돌아가셨고 만주에서는 소금국으로 끼니를 이어가야했습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계속된 독립운동으로 돈이 떨어진 우당은 난을 그려 중국사람들에게 팔며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우당의 필법은 대원군의 필법과 같았고 대원군의 필법은 추사의 필법과 같았다고 합니다.
당시 중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대원군과 추사의 그림을 사기 위해 많은 이들이 큰 돈을 지불하였고 우당은 이들에게 난을 그려주고 그 돈으로 무기를 구입한 것입니다.

난잎이 칼이 된 순간입니다.


자료제공=이종걸국회의원사무실

이날 이종걸 국회의원은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의거 전날 머물렀던 안봉근 선생의 집에서 찍은 사진을 공개하였습니다. 우리 항일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인 상하이 의거 전날,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결의를 다지며 시계를 교환하고 태극기 앞에서 사진을 찍은 장소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표식도 남아있지 않았기에 놀라고 안타까웠다고 합니다.

윤봉길 의사의 손녀 윤주경 선생 낭독이 더욱 특별하였던 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시민위원310은 이곳에 시민위원310의 이름으로 작은 표식이라도 새기자며 의견을 모았습니다.

<서간도 시종기>(일조각) 151쪽 낭독 음성입니다.
안그래도 어려운 살림에 아이들까지 병이 나 힘들어하였던 이은숙 선생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낭독회를 마치고 서촌 일대를 답사하였습니다.
서촌 곳곳에는 미쳐 알지 못했던 사실이 있었습니다. 바로 서촌 마을 전체가 거대한 친일파 집안이라는 것입니다.

경술국치에 ‘공’을 세웠으며 서촌 땅 절반이 그의 집이었다고 합니다.
담장 안이 웬만한 마을 크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윤덕영은 딸을 위하여 1938년 건물을 하나 세우는데 그 집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한옥, 양옥, 중국식 건축기법이 혼재된 이 건물은 벽난로 3개를 설치하는 등 호사스럽게 꾸며져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 1973년 화가 박노수가 이 건물을 인수하고 현재는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서촌에는 이완용 저택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주말을 보내기 위해 방문하는 곳에도 친일의 역사는 존재하였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대저택을 지어놓고 살았던 두 친일파를 생각해볼 때 당시 그들의 권세와 부가 하늘을 찔렀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조선 최고의 부자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굶어죽었는데, 나라의 주권을 넘기는데 가장 앞장 선 대표적인 인물들에 대한 응당한 처벌은 제대로 진행이 되었나 자문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