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2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
일제 치하, 여성 98명 총검에 의해 집단 처형
39인, 대한독립선언서 발표.. 민주·평등 선언
일제 심장부 도쿄서 ‘2.8독립선언문’ 발표
대한독립만세! 들불처럼 번진 3·1운동
유관순, ‘아우네장터 만세시위’ 주동자로 체포
‘대한민국’ 국호 탄생!
19.04.11 상해임정수립.. 대한민국뿌리
신흥학교→신흥무관학교.. 독립운동 열기 고조
민족을 하나로! 상해임시정부로 통합
‘백발 투사’ 강우규, 신임 총독 등에 폭탄투척
독립무장부대들 첫 연합작전 ‘봉오동 전투’ 승리
청산리 전투, ‘설욕’ 벼르던 일본군에 패배 안겨
김익상, 대낮에 총독부 유유히 진입..폭탄투척
김상옥, 1000여명의 경찰과 총격전.. ‘자결’
다시 타오른 민족운동 불길.. 6·10만세운동
나석주, 조선 수탈의 심장 ‘동척’에 폭탄 투하
광주 학생항일운동, 한국여고생 희롱으로 촉발
최초 고공 항일 투쟁.. 강주룡, 을밀대에 오르다
이봉창, 일왕에 폭탄 투척.. 현장서 체포돼
윤봉길 ‘상해 폭탄 투척 의거’.. 日군정 대타격!
‘부민관 폭파 의거’, 광복 전 마지막 의열 투쟁
아! 광복!
광복군 태운 C-47수송기, 여의도활주로 착륙
임시정부 요인 15인, 27년만의 ‘쓸쓸한’ 환국
김구, 경교장서 안두희 총격 피습으로 서거

서간도 시종기 낭독회 “서울을 떠나는 이회영과 6형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여성독립운동가는 300여 명 미만.
여성독립운동가 수는 과연 이렇게 적었을까요?

삯바느질, 식모살이로 번 돈을 임정에 보내고,
옥바라지 골목에서 독립운동가 아들 면회를 위해 하루 종길 기다렸습니다.

품 속에 소총 자루들을 숨기고 눈 오는 만주 벌판을 걷기도 하였습니다.
여성에겐 감시의 눈초리가 덜 하다는 장점 아닌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죠.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손끝에 내내 달려있던 바늘, 행주치마,
총알 하나로 두 명의 적군을 위협하였던 사격실력,
추락 따윈 두려워하지 않으며 비행했던 결계는 지금 누가 기억하고 있을까요?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 묘역에서 참배를 마치고 서울YWCA 회관으로 모였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큰 비가 내렸습니다.
의미가 있는 빗줄기인 것 같아 묵묵히 걷고 참배를 드렸습니다.

서해성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총감독의 사회로 낭독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작년 <백범일지> 낭독회에 이어 올해는 <서간도 시종기>를 낭독합니다.
<서간도 시종기>는 우당 이회영의 아내, 영구 이은숙 선생이 오직 기억과 손끝에만 의존해 써내려간 육필 회고록입니다.

전 재산을 들고 서울을 떠나 50여 년 동안 겪은 독립운동의 시작과 끝을 집대성한 육필 회고록이지만
‘규방문학’ 또는 ‘독립운동가 아내의 수기’라는 식으로 가치평가가 유보되어 왔습니다.

 

첫 낭독회인 만큼 이은숙 선생의 후손인 이종찬 위원장 부부, 이종걸 의원 부부가 낭독자로 함께 해주셨습니다.

첫 낭독자는 이종찬 위원장님의 부인인 윤장순 선생이었습니다. 시집올 때 즈음 읽어보았다는 <서간도 시종기>는 국한문 혼용으로 어려웠는데 지금은 한글판으로 이렇게 쉽게 읽으니 참으로 좋다는 소감을 내비치셨습니다.

또 소리내어 책을 읽은지 언제인가 더듬어보았더니 손주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준 것이 기억에 난다는 답을 주셨습니다.

‘낭독’을 한다는 것은 이렇게 다른 사람과 함께 읽는 것입니다. 한 책으로 두 명이 읽고 다섯 명이 읽고 열 명이 읽으니 얼마나 좋은 책읽기 방법인가요.

 

“만주를 오고 싶으면 미리 연락을 하고 와야지 생명이 위태치 않은 법인데, 하루는 조선서 신사 같은 분이 와서 여러 분께 인사를 다정히 한다. 수삭을 유하며 행동은 과히 수상치는 아니하나, 소개 없이 온 분이라 안심은 못했다.”

「서간도 시종기」에 언급된 만해 한용운 선생에 대한 내용입니다.
홀로 만주로 온 만해 선생은 하필이면 스파이로 오해받아 신흥무관학교 학생들에게 총을 맞으셨다고 합니다.
아무 연락도 없이 왔기에 스파이, 밀정으로 오해를 받은 것이죠.
이때 당한 부상으로 만해 선생은 평생 한쪽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사셨어야 했습니다.
기미독립선언서 공약 3장이 채워지지 못할 뻔한 순간이었습니다.

“내 생명을 뺏으려 하던 분을 좀 보면 반갑겠다”라며 대인배같은 말로 자신의 괜찮음을 표현하였던 만해 선생은
이후 불교계를 대표하여 3·1운동을 이끄셨습니다.

우당과 6형제가 들고 간 재산이 요즘으로치면 얼마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낭독회에서 나왔습니다.
69년 기준 모 월간지 추산으로 600억 규모라는 보도가 나왔으니 지금으로선 상상도 가질 않는 재산규모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을 붙이기도 조심스럽습니다.

그런 집안의 형제들 대부분이 독립운동을 하다 굶어죽거나 병사하였습니다.

 

이은숙 선생은 이후 고국으로 몰래 다시 들어와 고무신 공장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그 공장은 친일파 집안이 운영하는 공장이었습니다. 그렇게 번 돈을 다시 베이징으로 보내고 배고파 우는 아이들에게는 강냉이를 불려 주어야 했습니다.

하루는 공장에서 불량으로 생산된 짝짝이 고무신을 아들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제대로 된 고무신을 사줄 수는 없으니 짝이라도 맞지 않는 고무신을 준 것입니다.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온 이은숙 여사는 그 고무신이 아까워 신지도 못하고 끌어안아 잠이 든 아들의 모습을 보며 한참을 우셨다고 합니다.

그 아들이 이종걸 의원의 아버지라고 하십니다. 이 대목에서 관객도 패널도 모두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누군가는 ‘먹고 살기 위해 어쩔수 없이 친일을 하였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목숨을 걸고 국경을 건너고 모진 고초를 당하고 눈 속에서 산 속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그 사람들은 무엇이 되나요.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모두 바보라서 편한 것, 좋은 것을 몰랐을까요.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고 신념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는 그러한 존재를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고무신을 끌어안고 잠든 아들을 보았을 때 이은숙 선생의 심정은 어떠하였는지, 그 앞에서도 ‘먹고 살기 위해’라는 말로 변명을 할 수 있을지 묻고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이날 「서간도 시종기」낭독회 참석자 중 가장 어린 참석자의 목소리로 낭독하기도 하였습니다. 젊은 목소리로 듣는 「서간도 시종기」의 울림이 참으로 크고 듣기 좋았습니다.

낭독회를 마치고 명동에 새로 생긴 ‘우당길’을 함께 걸어보았습니다. 우당길은 이회영 선생의 집터였던 중구 명동에 새롭게 조성된 길로 우당 형제들에 대한 소개와 업적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조성된 곳입니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에도 많은 시민위원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함께 걸어주었습니다.

「서간도 시종기」낭독회는 앞으로 2번이 더 남았습니다. 작년에 이어 서울시가 낭독회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소리내어 읽음으로서 내가 김구가 되고 이은숙이 되어보자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낭독소리가 내 옆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가 닿는다면 독립운동 관련 책을 널리 전파하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이 날은 서울을 떠나는 독립운동가 집안에 대해 읽었습니다. 다음 낭독회에서는 간도에서 살아가는 독립운동가 집안에 대해 읽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읽고 걸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