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6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
일제 치하, 여성 98명 총검에 의해 집단 처형
39인, 대한독립선언서 발표.. 민주·평등 선언
일제 심장부 도쿄서 ‘2.8독립선언문’ 발표
대한독립만세! 들불처럼 번진 3·1운동
유관순, ‘아우내장터 만세시위’ 주동자로 체포
‘대한민국’ 국호 탄생!
19.04.11 상하이임정수립.. 대한민국뿌리
신흥학교→신흥무관학교.. 독립운동 열기 고조
민족을 하나로! 상하이임시정부로 통합
‘백발 투사’ 강우규, 신임 총독 등에 폭탄투척
독립무장부대들 첫 연합작전 ‘봉오동 전투’ 승리
청산리 전투, ‘설욕’ 벼르던 일본군에 패배 안겨
김익상, 대낮에 총독부 유유히 진입..폭탄투척
김상옥, 1000여명의 경찰과 총격전.. ‘자결’
다시 타오른 민족운동 불길.. 6·10만세운동
나석주, 조선 수탈의 심장 ‘동척’에 폭탄 투하
광주 학생독립운동, 한국여고생 희롱으로 촉발
최초 고공 항일 투쟁.. 강주룡, 을밀대에 오르다
이봉창, 일왕에 폭탄 투척.. 현장서 체포돼
윤봉길 ‘상하이 폭탄 투척 의거’.. 日군정 대타격!
‘부민관 폭파 의거’, 광복 전 마지막 의열 투쟁
아! 광복!
광복군 태운 C-47수송기, 여의도활주로 착륙
임시정부 요인 15인, 27년만의 ‘쓸쓸한’ 환국
김구, 경교장서 안두희 총격 피습으로 서거

[시민위원310] 2018년 시민위원310 첫 모임-시민위원 참여후기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었습니다.
처음 보아도 반가운 얼굴들이었습니다.

2018년 6월
시민위원310 첫 모임을 갖고 총 27명이 시민위원310 첫 모임 후기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중 함께 읽으면 좋을 네 개의 후기를 소개합니다.
찬찬히 읽어보며 그날의 두근거림을 다시 한번 만끽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시민위원310의 첫인상

김수연

시민위원310은 대학교 입학을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주체적으로 신청하고 참여한 첫 대외활동이다. 생각보다 시민위원310에는 대학생보다 직장인, 어르신들이 많이 참여를 하셨다. 그 광경을 보고 학생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시민위원으로 활동한다는 의미가 대체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첫 모임이 시작이 되고 시민위원이 생각하는 3·1 운동의 의미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마다 3·1운동을 받아들이는 의미는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공통적으로 그렇게 3·1운동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해낸 것이 대단히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3·1운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 되었다.

 

그 후에 이종찬님, 서해성님의 말씀들은 지루할 틈 없이 그분들의 말 속으로 나 자신을 빨려 들어가게 했다. 보통 내빈 소개, 연사 같은 것들을 할 때 말씀들이 너무 어렵고 흥미롭지 않아 집중하지 못하기 일쑤인데 이종찬님과 서해성님의 말씀들은 재밌고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귀에 쏙쏙 박히는 느낌이었다.

 

그 후에 김용만님이 시민위원이 해야 할 일을 소개시켜주었다. 바로 홍보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접었던 블로그를 다시 새로 시작하려고 한다. 이제 시민위원으로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으니 다음 활동부터는 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자랑스러운 시민위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왜 대학생보다 연령이 높은 사람들이 이 행사에 참여하는지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서울시에 대한 애정이 넘치고 여기서 듣는 강연이 너무 즐겁기 때문 아닐까. 나는 그들이 대단히 멋있게 느껴졌다. 나이가 들어서 자식들을 데리고 오면서 시민위원 활동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나이가 들어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애정을 계속적으로 가지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활동들을 많이 하고 싶다. 시민위원310 활동을 하면서 역사적 지식과 애국심이 마구마구 생겨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3·1운동은 통일정신이다

황원섭 시민위원

지난 6월 16일 오후 서울시청 본관 3층 회의실에서 개최했던 “3·1운동은 생일이다” 시민위원310 행사에 참석했었다. 그 동안 독립운동 관련 시민단체에 참여하고 있어 내년 3·1절 100주년을 뜻깊게 맞이하기 위한 시민위원 활동에 관심을 많았지만, 안국역 독립운동 태마 역 행사이후 처음 참석했다.

 

주최 측의 섬세한 준비로 행사는 매끄럽고 재미있게 진행되었다. 이종찬 이사장이 환영사를 통하여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의 의미를 설명하고, 대한민국은 1919년에 세워졌다는 역사적 논리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여 소위 ‘건국절 논쟁’이 이젠 끝났다는 확신을 얻었다.

서해성 총감독이 김구선생 귀국 장면을 설명하면서, 당시 연도가 태극기 하나가 없었고 출영 나온 환영객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얘기가 그 때의 정치적 상황을 암시하고 있어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3·1운동은 생일이다”라는 시민위원들의 생각을 소개하는 동안 3·1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비젼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지난번 시민위원310 사무국에서 “3·1운동 □□이다”라는 주장을 공모할 때 참여하려 했었는데 잠깐 잊고 넘어가 아쉬운 생각이 들어, 지금이라도 내 생각을 피력하려고 한다. “3·1운동은 통일정신이다”라는 내용이다.

 

3·1운동의 역사적 이상을 여러 각도에서 비쳐볼 수 있지만, 자유민주주의의 실현, 국제평화주의 추구, 한민족의 통일구현으로 이해하고 싶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상과 비전은 자주적 민족통일이라고 생각한다.

 

3·1운동은 일제 강점기에 국내외 살던 2,000만 동포가 모두 참여한 거족적인 민족운동이었다. 3·1운동을 모태로 수립한 상해 임시정부는 대한민국회의와 한성정부를 통합한 정부였고, 좌우익 등 모든 이념을 아우르는 통일정부였다.

 

사실상 민주주의나 국제평화주의는 어느 정도 실현되었지만 민족통일만은 아직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3·1운동이 지향해야 될 가장 중요한 비젼은 분단된 조국의 통일이라고 생각하여 “3·1운동은 통일정신이다.”라고 풀이하고 싶다.

 


3·1운동은 생일이다

 

시민위원 이재찬

 

지난 6.16일(토) 오후 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3.1운동은 대한민국의 생일임을 실감나게 하였다. 해가 바뀌면서 시민위원310의 참여와 역할은 빛을 발하고 있다. 개그우먼 조승희씨의 사회는 행사의 흥을 돋우고, 한국전통무용수 2인의 칼춤은 3·1운동의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인상을 주었다.

환영사에 나선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이종찬 위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어 매우 기쁘다.”고 하였다. 사실 한국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된 기념관이 없었으며, 다만 독립기념관, 백범김구기념관 등이 있었다. 반면 중국에는 상해, 항조우, 충칭 등 9곳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들이 세워져 있다. 이를 보면서 중국 정부와 중국인들이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임시정부에 대한 인식이 한국보다 크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 ‘3·1운동은 ○○이다!’라는 주제로 시민위원 310이 제출한 수많은 100년 메시지들은 3·1운동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내년 100주년 행사를 앞두고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어서 서해성 총감독은 3·1운동은 대한민국 근대사의 저수지라고 강조하였다. 민족사의 저수지에는 동학, 조선, 대한제국, 왕, 기생, 혁명, 공화정, 민주, 인권, 여성, 어린이, 미래도 다 들어 있다. 이제는 3·1운동이라는 발원지로부터 물을 대면서 새 역사를 개척해 나아가고 있다. 3·1운동은 군주제에서 공화정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어 대한민국 건국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그것이다. 3·1운동 100주년은 곧 대한민국 100주년이다.

3·1운동은 민족사의 거대한 생일이다. 2천년 이래로 우리 겨레는 이를 통해 완전히 새로 태어났다. 역사의 어떤 순간도 3·1운동 만큼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날 대한제국은 대한민국이 되었고, 장구한 봉건제는 민주공화제로 전환되었다. 왕토는 국토가 되었고, 백성은 시민, 국민이 되었다.

단재 신채호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하였다. 지난 날 얼룩진 역사를 돌아보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께는 경의를 표하면서 더 이상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역사를 남기지 않도록 3.1운동의 정신을 계승 발전하여 국민적 대동단결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다.

 

 


 

100년의 나라사랑을 되돌아본다

김기혁 시민위원

 

저는 이번 310 행사에서 3·1운동과 우리나라에 대해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시청에 도착해서 독립운동에 사용된 태극기를 바탕으로 만든 100년 배지를 받았습니다. 배지를 보며 타국에서 대한독립만세와 태극기가 담긴 깃발을 만들고 썼던 독립운동가를 생각하니 그 의미가 와닿았습니다.

사회자 조승희 님께서 조용하고 어색했던 분위기를 풀어주면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신칼무 공연에서 고운 한복과 전통 음악이 어우러져서 나오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참 좋았습니다.

처음에 ‘3·1운동은 생일이다’ 라는 제목을 보고 8·15 광복절이 생일이지 어떻게 3·1운동이 생일인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종찬 위원장님의 환영사를 들으며 중국에는 5곳이나 있는 임시정부 기념관이 우리나라에는 1개도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서해성 감독님은 3·1운동은 우리나라가 봉건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 왕토에서 국토로, 백성에서 국민과 시민으로 바꿔놓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왕의 통치를 받는 수동적인 역할이 아니라 국가의 주권자로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게 된 것도 3·1운동 덕분이라고 생각하니 새롭게 보였습니다.

영상 ‘대한민국 100년의 탄생’을 보며 3·1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가 독립할 수 있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 영상 ‘70년간의 비행’을 보며 김구 선생님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중국에서 힘들게 독립운동을 하다가 광복으로 인해 조국으로 올 때의 감회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제에게 현상금과 수배령이 걸려서 도망다니고 나라없는 민족이라는 서러움을 당하며 외롭게 독립의 희망 하나만을 붙들고 수십 년 동안 활동하신 것을 생각하니 참 감사했습니다.

그 후손인 저도 그 분들을 기리기 위해 홍보 활동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없었을테고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리며 살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시민위원이 참여한 ‘3·1운동은 ○○○이다’를 발표하는 시간에서 각자가 생각한 3·1운동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제비꽃다발’ 같은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와서 신기하기도 했고 하나하나가 다 의미를 담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김용만 단장님께서 사업을 소개하고 정다정 팀장님이 SNS 홍보와 뱃지, 우리밀 선물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사단법인 사람숲에서 탑골공원, 운현궁, 서북학회터 같은 역사적인 자리에 100주년 기념공간을 만드는 일에 후원하면 후원자 이름을 새긴다고 하는데 솔깃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때 우리밀 씨앗과 화분, 흙을 선물로 받았는데 잘 키워서 싹을 내고 밀도 잘 거두면 좋겠습니다.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 키우는 화분처럼 시민위원 310 활동도 꾸준히 참여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추모하고 기념하도록 힘쓰겠습니다. 내년 3·1운동 100주년 기념식 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모습을 그리며 다음 번 모임이 기대되고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