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22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
일제 치하, 여성 98명 총검에 의해 집단 처형
39인, 대한독립선언서 발표.. 민주·평등 선언
일제 심장부 도쿄서 ‘2.8독립선언문’ 발표
대한독립만세! 들불처럼 번진 3·1운동
유관순, ‘아우네장터 만세시위’ 주동자로 체포
‘대한민국’ 국호 탄생!
19.04.13 상해임정수립.. 대한민국뿌리
신흥학교→신흥무관학교.. 독립운동 열기 고조
민족을 하나로! 상해임시정부로 통합
‘백발 투사’ 강우규, 신임 총독 등에 폭탄투척
독립무장부대들 첫 연합작전 ‘봉오동 전투’ 승리
청산리 전투, ‘설욕’ 벼르던 일본군에 패배 안겨
김익상, 대낮에 총독부 유유히 진입..폭탄투척
김상옥, 1000여명의 경찰과 총격전.. ‘자결’
다시 타오른 민족운동 불길.. 6·10만세운동
나석주, 조선 수탈의 심장 ‘동척’에 폭탄 투하
광주 학생항일운동, 한국여고생 희롱으로 촉발
최초 고공 항일 투쟁.. 강주룡, 을밀대에 오르다
이봉창, 일왕에 폭탄 투척.. 현장서 체포돼
윤봉길 ‘상해 폭탄 투척 의거’.. 日군정 대타격!
‘부민관 폭파 의거’, 광복 전 마지막 의열 투쟁
아! 광복!
광복군 태운 C-47수송기, 여의도활주로 착륙
임시정부 요인 15인, 27년만의 ‘쓸쓸한’ 환국
김구, 경교장서 안두희 총격 피습으로 서거

기농 정세권 선생 기념사업 북촌답사와 토론회


 

2월 27일 푸근했던 날.
북촌 윤보선길 삼거리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자리는 조선어학회터이기도 합니다. 왜 이곳에, 무엇 때문에 모였을까요?

서울의 대표적 관광명소 북촌과 혜화동의 한옥마을,
최근 SNS에서 ‘핫한’ 익선동 등을 만든 조선건축왕 정세권 선생.
선생을 알고 선생의 업적을 객관적으로 조명하기 위한 답사와 토론회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좁은 골목을 누비며 선생이 조성한 한옥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조선을 지배한 일본은 서울도심에 일본석 주택을 대규모로 건설하려했습니다.
기농 선생은 이에 맞서 한옥을 대량으로 지어 한옥집단지구를 만드시고
이렇게 번 돈으로 독립운동 특히 조선어학회를 후원하셨습니다.
한옥을 지어 한글을 지킨 것입니다.
(답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조선어학회터에서 모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생은 대규모 독립운동단체인 신간회에 참여하셨고
종합건축사 ‘건양사’를 설립하여 조선인에게 중소형한옥을 저렴하게 제공하기도 하셨습니다.

기농 선생이 지은 한옥은 개량한옥이었기에 더 빠르고 보다 낮은 가격으로 지을 수 있었습니다.
짧은 처마와 함석 차양, 황토흙 대신 싸리나무를 사용하여 채운 지붕 등이 특징입니다.
이는 한옥마을이 조선시대에 지어진 것이라는 오해를 부식시킵니다.
2000년대 이후 북촌 가꾸기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이 개량한옥들은 조선시대 한옥풍으로 리모델링되었습니다.
지금은 선생이 지은 한옥 원형을 찾기가 어려워졌죠.

서울시는 이러한 기농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한국부동산개발협회, 대한건설협회 서울특별시회, 국사편찬위원회, 종로구가 ‘정세권 기념사업 추진을 위한 공동협력협약’을 체결하고 북촌에 남아있는 선생의 주택사업유산을 기리는 기념사업을 진행중입니다.
서민을 위해 구상한 근대 도시형 한옥을 보존하는 것, 한옥을 지어 독립운동을 한 역사가 잊혀져서는 안되는 것이니까요.

답사에 이어 북촌 가회동성당에서 열린 기념사업 토론회는 처음 공식적으로 기농 정세권 선생을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선생의 업적을 객관적으로 조명하는 자리에 관련 단체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적극 참석해주셨습니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박용규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정세권의 민족운동 활약상”,
서해성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총감독은 “일제강점기 북촌의 문화사회학적 이해와 재구성”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였습니다.

김경민 교수는 기농 선생이 ‘사람수가 힘이다. 일본인의 복촌진출을 막아야 한다.’며 단순한 디벨로퍼가 아닌 식민도서 경성에서 조선인의 주거환경을 지킨 분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박용규 교수는 기농 선생의 조선어학회 후원등으로 <조선말 큰사전>과 같은 업적을 이루는 것이 가능했다면서 이때문에 선생이 투옥되어 고초를 당하고 현재 뚝섬 일대 땅 3만5천여 평을 강탈당한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서해성 총감독은 ‘북촌은 한글이다.’라며 일제강점기 문화방파제로서 역할을 하였던 북촌, 총을 들지 않은 항일운동가 정세권이 그동안 주목받지 못하였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 저항문화 유산을 기억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종합토론에는 서울시 재생정책과장 강희은, 한국부동산개별협회 수석부회장 김승배,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장규식, 한겨레 문화부기자 노형석씨가 참석하여 한옥마을의 문화와 역사적 가치,  관광명소로써 기능, 발전 방안에 대한 토론을 벌였습니다.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아준 다는 것은 어쩌면 그 땅이 가지고 있는 복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북촌을 비롯한 한옥마을이 단순히 소비적인 장소가 되기에는 기농 선생의 노력과 삶이 너무 깊고 때로는 고단하였습니다.

일본에게 고초를 당하시면서 “왜 조선집만 짓느냐”는 추궁에 “내가 지을 줄 아는 게 그것 밖에 없어서다.”라고 하셨습니다. 때로는 ‘집 장사’로 매도되기도 하였고 77살에 자택도 아닌 정씨 재실齋室에 머무시다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건축왕이라 불렸던 사람이 말입니다.

기념토론회에선 “아직까지 정세권 선생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안타깝고 반성해야하는 일이지만 이제부터라도 기농 선생을 기억하고 숨어있는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2019년 2월 정세권 선생 기념전시회가 열립니다.
선생에 대한 전시물 상설전시, 투어코스를 개발하여 상시적으로 기념사업을 운영할 예정입니다.
북촌으로 향하는 가벼운 발걸음 한켠에는 선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한옥 지붕이 늘어날 수록 우리 글이 지켜졌고 독립운동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