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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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만세! 들불처럼 번진 3·1운동
유관순, ‘아우내장터 만세시위’ 주동자로 체포
‘대한민국’ 국호 탄생!
19.04.11 상하이임정수립.. 대한민국뿌리
신흥학교→신흥무관학교.. 독립운동 열기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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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무장부대들 첫 연합작전 ‘봉오동 전투’ 승리
청산리 전투, ‘설욕’ 벼르던 일본군에 패배 안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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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타오른 민족운동 불길.. 6·10만세운동
나석주, 조선 수탈의 심장 ‘동척’에 폭탄 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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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고공 항일 투쟁.. 강주룡, 을밀대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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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광복!
광복군 태운 C-47수송기, 여의도활주로 착륙
임시정부 요인 15인, 27년만의 ‘쓸쓸한’ 환국
김구, 경교장서 안두희 총격 피습으로 서거

100년 학교 시리즈 강연 ③ "3·1운동인가, 3·1혁명인가 정명을 찾는다" - 시민위원참여후기


 

正名을 찾아야 한다

 

최다연

 

역사에서 이름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그 이름 안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가치와 의의, 당시의 사화상 등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우리 역사 안에 많은 사건들은 “正名”을 찾아왔다.
하지만 유독 ‘3·1 운동’은 그 가치가 폄하된 상태로 이어져 왔다.

 

3·1운동을 3·1혁명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몇 전년 팟캐스트 방송이나 학술 심포지엄 등으로
접한 경험이 있었다. 그 당시에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터라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3·1혁명은 중국 신해혁명, 러시아 혁명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제에 의한 식민지배를 거부하고 자주독립을 선언했고,
봉건왕조를 거부하고 민주공화정을 주창했다.
또 여성이 역사 현장에 주체적으로 등장하였다. 어린 소녀, 기생 등 나이와 신분, 세대를 넘어선 등장이었다.
당시 여성의 교육수준을 보더라도 적지 않은 수의 여성이 참여한 사건이었다.
또 전근대적 신민(臣民) 의식이 근대적인 시민(市民) 의식으로 전환되었다.
엄혹하고 거대한 흐름의 줄기를 우리의 힘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므로 ‘운동’이 아니라 ‘혁명’ 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왜 가치중립적인 ‘운동’이라 부르고 있는 것일까?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신해혁명 등 다른 나라의 역사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혁명’이라는 용어가 왜 우리 역사에는 이토록 인색한 것일까?

 

오리엔탈리즘이 떠올랐다. 오리엔탈리즘은 ‘주체’인 서양에 의해 ‘타자’인 동양을 지배하고
관찰, 탐구, 정의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서구의 식민주의, 인종차별주의, 자민족 중심주의 등과 결부되어
서양과 동양은 문명-야만, 합리-불합리, 선진-후진 등 이항대립적으로 체계화되고 재생산 되어왔다.

 

19세기 후반 동아시아 3국은 서양 세력에 대해 처음에는 쇄국정책을 통해 대항했지만 중국은 중체서용(中體西用),
한국은 동도서기(東道西器), 일본은 화혼양재(和魂洋才)로 선별적인 수용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홀로 근대화에 성공했다 자부하게 되고
서양의 제국주의적 시점과 동일한 시점을 갖게 되면서 점차 ‘동양’을 타자화하는
일본형 오리엔탈리즘을 만들어나갔다.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탈아론(脫亞論)」에서 아시아의 근대화 능력이 없는 ‘야만국’과의 절연을 강조하여
서구 열강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서 자신을 분리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일본형 오리엔탈리즘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우리 안에 내면화되었고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 된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 역사에 ‘혁명’을 입히지 못하는 원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식민이라는 시련을 겪었으나 자발적인 연대와 저항의 힘을 생산해온 역사적 경험이 있다.
가장 최근에는 촛불 혁명으로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저력이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더 이상 ‘타자’로서의 동양이 아닌 ‘주체’로서의 동아시아가 되어 우리 역사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억압되고 왜곡된 역사를 대항하는 역사로서 바로잡아 가야 한다.
‘정명찾기’는 그 일환으로 매우 중요한 발걸음이라 생각한다.

 

우리 안에 남아있는 오리엔탈리즘을 청산하여 ‘운동’을 버리고 ‘혁명’을 되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백 살이 되는 해 2019년. 2019년 3월 1일에는 3·1혁명 내지 3·1독립혁명, 기미독립혁명절로서의 정명을 찾기를 기대해 본다.

 

 


 

 

 

박중호

 

강의 제목만 듣고 보고는 어려웠으나 힌트를 듣고 나니 답이 너무나 쉬운 질문이었다.
아주 큰 답을 원하는 아주 짧은 힌트였다.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하고 참여해서 큰답을 내도록 해야 할 몫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아무리 맛있고 많은 먹을거리라도 내손으로 먹어야 한다.
나는 먹을거리의 숟가락과 젓가락이 되도록 해야겠다 고 생각하며 강의를 잘 들었다.
자리를 마련하고 강의를 해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를 드린다.

 


 

 

정윤재

 

1919.3.1 운동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역사에 길이길이 빛날 ‘대혁명'(Great Revolution)이다.

입법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 국민의 참여의식을 고취시켜서 서명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첫째, 먼저 시민위원 전체가 서명하고 시민위원 1인 당 100명 씩 서명 배당(몫)을 하여 목록을 작성하여서 가족, 친척, 동료, 주변 그 누구에게나 역사의 중요성을 홍보·취지를 설명하고 대대적인 서명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둘째, 전체 시민위원이 서명 날인한 것과 배당한 서명 날인 받은것을 종합하여 토대로 하고 그것을 근거로 전체 시민위원이 참석하여서 ‘로상'(거리)서명 국민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최소한 : 10,000명~ 그 이상으로 국민의 참여를 해야 한다.

#’행주산성’의 역사를아십니까?

배고프고 굶주린 그 시절. 주린 배를움켜쥐고 아낙네들이 행주치마(명주치마)에 돌과 자갈을담아 인산인해를 이루어 참여했던 대 국민의 역사 우리는 역사의 교훈으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위원들이 참여하여 강의듣는그 순간에는 나름대로의 뜨거운 심정, 열정을 가졌다가 문 열고나가는 순간 흐지부지하는 말만하고 행동이 없는참여의식은 버려야한다.

<시민위원 310>위원은 역사에 자긍심과 다음세대에 위대한 유산을 물려주는 역사의 증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