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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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답사 세 번째 길 - '대한제국의 길을 걷다'


대한제국은 어디서 시작되고 어떤 길을 걸었을까요?
가을냄새가 완연했던 10월 21일 토요일.
시민위원들은 환구단에서 옛 러시아 공사관까지 함께 걸으며
우리 근대역사의 꿈과 아픈 부분을 확인하였습니다.

 


 

출발지는 환구단이었습니다.
고종은 이곳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냄으로서
황제가 되었습니다.
왕위를 계승하는 것은 특별한 행위를 통해 되는 것이 아닌
하늘에 제사를 지냄으로서 이루어진다고 하네요.
오직 왕만이 제사를 지내는 권한을 갖고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 환구단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 철거되고 호텔이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화강암 기단 위에 세운 층 8각정 황궁우만이 남아있습니다.

커다란 빌딩숲 사이에서 3층 높이의 목조건물은 그리 큰 것이 아니지만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했을 당시를 상상해본다면
이곳은 하늘만큼 높은 곳이었을 겁니다.

발걸음을 옮겨 덕수궁 근처로 향합니다.

 

덕수궁(경운궁)은 고종이 1897년 2월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궁하여
1897년 10월 12일 황제로 즉위한 이후 1907년 물러나기까지 머물렀다고 합니다.

 

 

대한문 역시 지금 자리보다 더 앞으로 나와있었고
현판 역시 대한문(大漢門)이 아닌 대안문(大安門)이었다고 합니다.

 

중명전.
광명이 그치지 않는 전각.

그러나 그 이름과는 다르게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불법적으로 체결된 곳이죠.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이 건물은 1901년 화재로 전소된 후 지금과 같은 2층 벽돌 건물로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1907년 4월 20일 헤이그 특사로 이준 등을 파견한 곳도 바로 이곳이라고 합니다.

 

 

아관파천의 현장인 옛 러시아 공사관에서 답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처음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근대로 새롭게 발걸음을 떼었던 환구단에서 시작하여
왜세의 압박에 열강의 공사관으로 몸을 피해야했던 현장까지 걸으며
시민위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리고 혼란스러운 나라 속에서 조선의 수많은 백성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누군가에게는 출근길, 누군가에게는 데이트코스인 길 속에 대한제국의 시작과 끝이 있었습니다.
2.6km가 되는 길을 걸으며 100년 전으로 돌아가봤던 <100년 답사 세 번째 길 – 대한제국의 길을 걷다>.
함께 걸어주신 시민여러분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