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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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답사 두 번째 길 - '국치길을 걷다'


직접 겪지 않았어도 잊을 수 없는 날이 있습니다.
우리의 주권을 빼앗기고, 말을 빼앗기고, 내 이름, 우리 땅, 우리나라를 빼앗겼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민위원310은 우리의 주권이 넘어간 곳, 일제가 함부로 조선백성을 유린했던 곳, 우리 정신까지 지배하려고 시도했던 곳을 걸어보았습니다. 그곳은 서울의 중심 남산이었습니다.

 

집결지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을 기리는 ‘기억의 터’였습니다. ‘통감관저’이기도 했던 이곳은 이제 터만 남아 있습니다.
1910년 8월 29일 이곳에서 강제병합조약에 체결되었습니다. 경술국치의 현장에서 시민위원들은 출발했습니다.

이곳에는 ‘거꾸로 세운 동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1936년경 통감 관저터에 하야시곤스케(林権助1860~1939)의 동상이 있었습니다.
그는 을사늑약 등 일본의 한국 침략에 대해 적극적으로 행동했던 인물입니다.
이러한 자의 동상을 받치고 있던 판석을 거꾸로 세워 말 그대로 ‘거꾸로 세운 동상’을 이 곳에 놓음으로서 나라를 잃은 치욕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인 것이죠.

이제는 어린이 시민위원도 많이 늘었습니다.
작은 발로 함께 걸었던 그 길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좁은 길을 걸어 애니메이션 센터 앞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바로 ‘조선총독부 터’ 입니다. 1910년 강제병합 이후 통감부가 폐지되면서 조선총독부가 설치되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다니는 곳에 이런 역사가 있다는 것이 놀랍고 한편으로는 꼭꼭 숨겨져있는 것 같아 놀라울 따름입니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노기신사 터’로 이동하였습니다.


일본으로서는 러일전쟁의 영웅인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 : 1851-1912)’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일제는 1933-34년 각 지방 유지들에게 후원금을 거두어 노기신사를 건립하게 됩니다.
이곳에는 보통 일본 신사의 입구에 설치되어 손을 씻고 마음을 가다듬는 용도로 쓰이는 수조가 존재하였고
‘세심(洗心)’이라는 글자와 기증자의 이름이 수조 외벽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는 한국인이었습니다.

 

이번에는 ‘한양공원비석’이 있는 곳으로 걸어보았습니다.
꽤 높은 곳이었는데도 시민위원분들은 묵묵히 걸어주었습니다.
한양공원 조성을 기념하기 위한 비석에는 고종황제가 쓴 ‘한양공원’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신궁 건설계획에 따라 한양공원은 사라지게 됩니다.

일제는 1914년 남산 전체를 공원화 할 계획을 수립하고 1918년 조선신궁을 옛 남산 식물원 일대에 건립하면서 한양공원은 문을 닫게 된 것이죠.

이 곳에서 시민위원은 손바닥을 보이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곳에 왔다는 것을 잊지 않겠다는 맹세일 지도 모릅니다.

 

어디서 많이 본 계단이죠?
드라마 촬영으로 유명한 이 남산 계단의 수는 총 384개.
이 계단을 오르면 ‘조선신궁 본당’으로 들어서게 된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마지막 장소인 ‘조선신궁 터’에 도착하였습니다.
일제가 한국에 세운 가장 높은 사격을 가진 신사.
식민지 정부의 국가의례를 집전하며 조선인에게 신사참배를 강제했던 곳.
그러나 태평양 전쟁 종전 이튿날 (1945년 8월 16일) 일본인들은 승신식(스스로를 하늘로 돌려보냄을 의미)을 연 뒤
해체 작업을 벌였고 같은 해인 10월 7일 남은 시설을 소각하였습니다.

 

오늘 시민위원이 걸었던 이 길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인 ‘국치길’로 조성됩니다.
어쩌면 깨끗하게 조성된 산책로처럼 걷기 쉬운 길은 아닐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더운 날(1910.08.29) 남산까지 올라 나라를 넘겼던 혹은 빼앗았던 자들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 학문, 제도에 일제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처럼 길에도 아픈 역사는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서로에게 물병을 건네며 걸었던 시민위원과 그리고 국치길이 조성되면 그 길을 걸을 서울시민이 있다면
남산은 돈까스, 삼순이 계단, 케이블카 같은 것들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닌 더 중요한 것들이 있는 곳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입니다.
걸음걸음 함께 해주신 시민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