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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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 탄생일 기념과 백범일지 낭독회 - 시민위원 후기


서울을 떠나 충남 공주에 위치한 마곡사에서 시민위원들은 백범일지를 낭독하였습니다.
모두가 백범 선생이 되어 마곡사를 둘러보고 선생의 태산같은 기개와 독립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였습니다.
여기 몇 개의 후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정성스럽게 보내주신 후기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서울 시청역에서 마곡사까지 청년 백범 선생과 함께한 아름다운 여행

김갑석 시민위원

 

늘 그랬듯이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시민위원으로 참석하기 위해서는 개인일정은 미루고, 우선적으로 모든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생각하면서, 지난번 1회 낭독회 처 럼 지각을 한 적도 있기에 이번에는 조금 더 일찍 도착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청역 집결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행사준비를 위하여 사무국의 직원들이 먼저 도착해서 접수와 안내를 하시고 식사와 음료를 나누어주시는 중에 시민위원 몇 분들이 먼저 도착해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참석하시기로 한 시민위원님들 모여서 버스를 타고 충남 공주시에 소재한 마곡사로 향하였습니다.

 

 

어릴 적에 백범 김 구 선생님에 대한 위인전은 읽었지만, 나이가 들어서 백범일지를 제대로 읽은 적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버스 안에서 청년 백범 선생님의 마음을 잠시 생각을 했습니다. 청년 백범 선생님이 치하포에서 21세 나이로 일본인 “쓰치다”를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이 왜인을 죽였다”고 말했습니다. 치하포 의거 당시 김창수 님으로 살던 청년 백범 선생님이 인천에서 투옥되신 후 2년간의 옥중생활 중에서 탈옥한 후 동지를 찾다 23세에 출가한 마곡사에서 승려 생활을 하신 것을 생각하면서, 저 또한 20대 청년 시절에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1980년대를 보낸 청년시절의 삶을 잠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 일행들을 태운 버스는 휴게소에서 잠시휴식을 취하고, 버스 승차 후 공주시에 소재한 마곡사에 도착하였습니다. 청년 백범 선생님께서 걸어서 오신 이 길을 우리는 버스를 타고 온 것을 생각하니 죄송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백범 선생님께서 심검당에 도착한 마음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일행들도 주지 스님에게 인사를 하고, 백범당에서 백범일지 낭독회를 가졌습니다. 백범일지를 엮은 도진순 교수님께서 귀한 걸음으로 함께 자리해 주셔서, 낭독회는 더욱더 뜻깊은 행사가 되었습니다.

 

 

낭독의 시간 중에 저에게도 두 번째 낭독의 순서를 가졌습니다. 설렘과 떨리는 마음으로 저에게 주어진 분량을 낭독하였습니다. 함께한 시민위원님의 낭독회를 통하여, 서해성 감독님, 도진순 교수님, 김용만 단장님, 정동환 선생님과의 토크를 통하여, 청년 백범 선생님의 삶과 고뇌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민이란 무엇인가? 독립운동이란 무엇인가? 지금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자유대한민국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을 준비하면서, 시민위원으로 참여한 것이 앞으로 해야 할 과제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오늘 낭독회는 청년 백범 선생님과 함께한 아름다운 여행이었습니다. 동행한 모든 분에게 감사 인사드립니다.

 


 

민명주 시민위원

 

8월 29일 시민 310위원 활동으로 마곡사 백범당에서 백범일지 낭독회를 하였다.

마곡사는 신라 고승 지장율사가 640년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대광보전앞 5층 석탑은 아래는 고려시대 양식이고 꼭대기는 원나라 라마교 양식의 풍마동 장식이다. 세계에 딱 세 개밖에 없는 보물이라고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은 명성황후시해사건의 분노로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나루에서 일본인 중위 쓰치다를 죽였다. 그 일로 감옥의 김구 선생은 고종황제의 전화로 사형을 면하고 탈옥 후 마곡사에서 머리를 깎고 승려 생활을 백범당에서 3년 하였다.

백범당 마당에서 백범 김구 선생 탄생일 기념과 백범일지 발간 70주년-백범일지 낭독회를 하였다. 백범 김구의 책 중 청년 백범 김구의 치하포 의거에서 마곡사까지의 부분을 반쪽 분량만큼의 문단을 돌아가며 읽는데 여느 성우분 못지않은 감격으로 눈물이 나고 분노로 치가 떨리며 내가 마치 김구 선생님과 함께 그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 마음으로 김구 선생님의 손자이며 시민 310 단장님과 대광보전 앞에서 사진을 함께 찍게 되어 행복했다.

또한, 어쩌다 보니 극락교를 이회영 선생님 역의 전문배우 정동환 님과 함께 건넜다. 내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분이 이회영 선생님이라 내것 다 내어주고 비참히 돌아가셨지만, 왠지 지금 극락에서 행복하시다 느껴져 내 가슴에 혼자 감동이 밀려왔다.

< 마곡사 대광보전과 5층석탑 >

< 대광보전앞 시민 310 단장님과 함께>

< 마곡사 극락교 이회영 전문배우 정동환님과>

 


 

임춘경 시민위원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머물었던 충남 공주에 위치한 마곡사를 찾아 그곳의 백범당에서 백범일지를 읽는 낭독회에 참여하게 되어 310 시민위원으로서 특별한 의미가 더해졌다.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며 마곡사로 내려가 그곳에서 새털구름 낀 하늘을 보며, 그 산중의 법당을 걸어서 찾아갔다는 젊은 청년 백범 김구 선생을 상상해 보았다.

 

백범일지의 ‘치하포 사건’ 부분을 읽고 진행한 점에 대하여는,

마곡사 백범당 앞에서 진행하고, 주지 스님, 도진순 교수님, 서해성 감독님, 김용만 단장, 등등의 말씀도 좋았다.

 

그날 낭독하였던 부분에 대하여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강인하고 용맹한 애국 청년 기상과 기치를 알 수 있었다. 한편, 백범 선생님의 문장력이나 표현력이 뛰어난 문학적 면모도 엿볼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하에 애국 청년으로서의 일제에 대한 강렬한 반감과 조국 독립에 대한 갈망은 그 당시 국민에게는 당연한 일일 것이나, 그것을 실천하고 많은 독립 운동가들을 키워내고 지휘하며, 조국 독립을 위해 애썼던 백범 선생님이 남달랐다는 점, 그리고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정윤재 시민위원

 

“살아서백년,죽어서백년”

도마 안중근 <하얼빈의총성>

시모시자 1910년 12월14일.관동도독부 여순지방법원에서 개정된 안중근의 제6회공판날.사형선고를받은 안중근은 얼굴빛하나 변하지않고 즉석에서 상고를 포기한 채 재판장 마나베 판사에게 이렇게 말했다.나는 이렇게 될 것을 안지 이미 오래다.내 구차스럽게 살기를 원치않으니 상고를 포기한다.그런데 이보다 더 극심한 형은없느냐?”안중근이 상고를 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어머니 조 마리아가 안중근에게 보낸 편지 때문이였다.

[응칠아.네가 이번에 한 일은 우리 동포 모두의 분노를 세계 만방에 보여준준 것이다.이 분노의 불길을 계속 타오르게 하려면 상고를 하지말고 우리민족의 대의를 위해 거룩한 죽음을 택해야 될 줄로 안다.혹시 자식으로서 늙은 에미보다 먼저 죽는 것이 불효라고 생각하고 상고를 하겠다면 그건 결코 효도가 아니다.기왕에 큰 뜻을 품고 죽으려면 구차히 상고하여 살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남기지 않기바란다.

이 글은 본 일본인들은 감탄을 금치 못한채 얼마나 감동을 하였으면’시모시자'(是母是子:그어머니에그아들)’이라고 하여 자기네 신문에 대서특필하였겠는가.이러한 내용은 당시 여순감옥의 간수 헌병이였던 지바 도시치(千葉十七:당시27세)가 편지내용에 감동되어 자신의 일기장에 기록해두었던 것이 후일 확인되어 항일투쟁사의 소중하고 값진 기록이되었다.

– [ 실록 – 독립운동사] 3권 발췌 – [시민위원 310] 鄭 潤 載 委員

 


 

김대진 시민위원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한참을 달리고 달려서 좁은 산길로 접어들었고 또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곳은 충남 공주에 있는 마곡사라는 절이었다.

 

영산전을지나서 홍성루, 해탈문, 천왕문을 지나니 극락교가 나오고 넓은 뜰에 오층석탑이 기세등등 자리하고 있었다. 왼쪽에는 ‘응진전’ 이곳이 바로 청년 김구 선생이 머물던 곳이다.

 

백범일지 주해자 도진순 선생님의 낭독과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설명으로 시작이 되었고 시민위원310위원들도 돌아가면서 한구절 읽어 내려감에 청년 김구의 외침과 일본군들을 향한 발길질이 바로 코앞을 스치는 느낌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낭독이 마무리되고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을 둘러볼 수 있었다. 어디를 가든 청년 김구의 발자취가 묻어있는 듯 웅장함에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 산기슭을 올라오는동안 마곡사라는 표지판도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나’ 청년 김구 독립운동가 김구의 파란만장한 시절에 머물던 소중하고귀중한 곳임에도 전혀 알수없었음이 마음이 아팠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청년’ 그리고 독립운동가 김구를 쉽게 찿아가고 찿이볼 수 있도록 표지판도 곳곳에 세우고 사이버 검색창에도 찿아볼 수 있도록 마곡사와 김구의 연관성을 제안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