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1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
일제 치하, 여성 98명 총검에 의해 집단 처형
39인, 대한독립선언서 발표.. 민주·평등 선언
일제 심장부 도쿄서 ‘2.8독립선언문’ 발표
대한독립만세! 들불처럼 번진 3·1운동
유관순, ‘아우네장터 만세시위’ 주동자로 체포
‘대한민국’ 국호 탄생!
19.04.11 상해임정수립.. 대한민국뿌리
신흥학교→신흥무관학교.. 독립운동 열기 고조
민족을 하나로! 상해임시정부로 통합
‘백발 투사’ 강우규, 신임 총독 등에 폭탄투척
독립무장부대들 첫 연합작전 ‘봉오동 전투’ 승리
청산리 전투, ‘설욕’ 벼르던 일본군에 패배 안겨
김익상, 대낮에 총독부 유유히 진입..폭탄투척
김상옥, 1000여명의 경찰과 총격전.. ‘자결’
다시 타오른 민족운동 불길.. 6·10만세운동
나석주, 조선 수탈의 심장 ‘동척’에 폭탄 투하
광주 학생항일운동, 한국여고생 희롱으로 촉발
최초 고공 항일 투쟁.. 강주룡, 을밀대에 오르다
이봉창, 일왕에 폭탄 투척.. 현장서 체포돼
윤봉길 ‘상해 폭탄 투척 의거’.. 日군정 대타격!
‘부민관 폭파 의거’, 광복 전 마지막 의열 투쟁
아! 광복!
광복군 태운 C-47수송기, 여의도활주로 착륙
임시정부 요인 15인, 27년만의 ‘쓸쓸한’ 환국
김구, 경교장서 안두희 총격 피습으로 서거

100년 학교 시리즈 강연 ① - 참여후기


6월 14일 진행된 100년 학교 시리즈 강연 ①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을 듣고 많은 시민분들께서 참여후기를 보내주셨습니다.
이중 다섯분의 후기를 소개합니다. 더불어 우편과 메일로 참여후기를 보내주신 많은 시민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김찬우 시민님

대한민국 건국, 3∙1 ‘혁명’ 100주년 강연을 들으러 시청으로 향하며 어떤 내용의 강연을 들을까 생각해 보았다.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 지금부터 시민위원들이 해야 할 일들 정도에 대한 희망찬 강연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강연의 내용은 나의 예상과는 아주 달랐다.

대한민국 건국, 3∙1 ‘혁명’ 100주년 강연을 들으며 가장 마음에 와 닿던 대목은 ‘우리나라는 친일파를 청산한 적이 없다. 우리는 독립운동을 청산하고 있다!’ 이었다. 독립이 된지 아직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지금, 우리나라 학생들을 위한 교과서에는 프랑스 혁명의 노래는 소개될지언정 독립운동가들의 혼이 담긴 노래 한편은 실리지 못하였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한 교과서에는 친일파의 소설은 쓰여있지만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쓰던 이들의 한 어린 글 한편은 읽히지 못하였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어갈 청소년들을 위한 교과서에는 세계의 명화들이 실려있지만 그들에게 독립을 위해 자신과 자신의 가족까지 바친 우당 이회영 선생의 묵란화 하나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친일파의 책으로 교육받는 나라, 일본의 통치에서 벗어나 친일파의 통치를 받는 나라, 정말 원통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이 강연을 들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애국심은 물론 일제와 친일파에 대한 반감이 샘솟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시간의 강연이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참가한 시민위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시민위원들을 각성시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김홍렬 시민님

1919년 3월 1일. 전국 곳곳에서 200만이 넘는 국민들이 일제의 식민지배 총칼에 맞서 죽을 각오를 하고 국권회복을 위해 목청 높여 독립의 열망을 토했던 그날의 함성이 지금 우리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기억되고 있는 것일까?

생일, 결혼기념일, 회갑, 칠순 등 가족과 지인들의 기념일은 챙기고 있지만 정작 우리 대한민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목숨까지 던졌던 수많은 국민들의 용기와 숭고한 희생이 서려 있는 삼일절을 나는 얼마나 소중히 챙기고 있었던가? 해마다 삼일절을 비롯한 주요 국경일에는 이른 아침에 아파트 베란다에 태극기를 게양했다. 20층 아파트에 겨우 서너 집 정도 태극기가 게양되는 것을 보면서 이 정도 작은 동참하는 것 만으로 나름 내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고, 동참하지 않은 이웃들을 탓했던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번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 강연을 듣고 나서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지만 정작 학교에서도, 방송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역사적 사실들을 강연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의 현실은 친일청산이 아니라 독립운동의 청산이었다는 참담한 현실을 토해내는 강연자의 발언에 가슴 속 깊숙이 탄식이 흘러나왔다. 부인할 수 없는 이런 현실 속에서 광복 70년이 훌쩍 지나간 것에 대해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나 자신의 무관심을 먼저 반성하게 되었다. 먹고 살기에 급급했고, 인생을 즐기는 것에 관심을 두고 살아왔을 뿐, 우리나라가 이렇게 자유를 누리고 발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는지는 까맣게 잊고 살아온 것에 대한 죄송함이 가슴을 친다.

3·1운동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온 국민이 동참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난 항일독립혁명이다. 영국의 명예혁명이나 프랑스 시민혁명보다도 국가적인 동참의 규모나 그 의의를 생각해 본다면 이제는 3·1운동이 아닌 3·1혁명으로 명명해야 한다는 강연내용에 많은 공감이 되었다.

2년 후면 3·1운동 100주년이 되는데, 우리가 소홀히 잊고 살아온 3·1운동의 의의와 소중한 역사적 사실들을 나부터 알고자 노력하고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2년을 잘 준비해서 역사적인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 을 온 국민이 자랑스럽게 마음에 품고 후손 대대로 기억할 수 있도록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남복희 시민님

2003년 겨울, 중국의 춘절연휴의 상해.

춘절연휴를 즐기려는 중국의 엄청난 인파에 놀라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하였던 2003년 겨울이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아있어서 늘 아쉬웠다.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상해는 늘 부랴부랴 다녀오는 도시가 되었고, 단 한번 보았던 상해임시정부 청사를 다시 방문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 기억속의 그 곳은 좁은 골목길 안쪽의 오른쪽에 자리 잡은 3층의 허름한 건물이었고 좁고 어둡고 무거운 장소다.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누렇게 변색된 태극기와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던 분들의 사진을 보며 한 바퀴 돌았었다. 사진촬영도 금지되었던 기억이지만 좁은 골목과 임시정부 청사의 외부모습을 찍었던 카메라는 아쉽게도 춘절을 기념하는 어마어마한 폭죽 구경을 하다가 소매치기 당했다. 카메라가 아까운 것 보다 그 때 찍었던 사진들이 너무나 아깝고 아쉬웠다.

임시정부 요원들은 3·1독립운동 이후 국내의 탄압을 피해서 상해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전 세계에 대한민국이 독립국임을 선언하고, 독립을 위하여 외교적 노력과 무력 독립투쟁까지 펼쳤었고 그 투쟁의 중심이 되었던 임시정부가 상해 구도심의 초라한 골목길 한 귀퉁이에 있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 상해에 사는 한국인의 설명에 의하면 고층빌딩 속의 번화한 상해속의 임시정부청사가 있는 지역도 재개발될 것이어서 임시정부 청사의 존립도 걱정스럽다 했었는데 지금은 어떤 모습이 되었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그렇게 조금씩 기억하다가 잊어버리던 일들이 반복되면서 시간은 흐르고 나는 조금씩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잊고 지내고 있다. 그렇게 십년도 넘는 시간들은 무심하게 지나가 버렸다.

 

2017년 봄. 서울의 시민위원310 모집공고.

우연히 서울시청 홈페이지에서 시민위원310 모집공고를 보게 되었고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일들에 대한 갈증이 갑자기 더 심해지고 그 갈증을 해소하고자 시민위원 지원서를 냈고 난 지금 예비시민위원310 이 되어서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 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몰랐었고 그냥 모르는 채로 대충대충 쉽게 살아가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던 내 모습을 뒤돌아 볼 정도로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그렇게 몰랐던 것에 대한 스스로의 민망함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쉬지 않고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혼자는 쉽지 않다. 혼자라는 편리함으로 쉽게 중단하게 될 것 같아서 누군가와 함께 하는 기회를 찾게 된 것 같다. 가끔 읽었던 책 몇 권, 뉴스에 오르내리던 여러 가지 기사들, 일본과 관련된 다양한 감정들과 자료들은 내 머릿속에서 흩어진 퍼즐처럼 마음대로 흔들리고 제멋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렇게 흩어진 퍼즐들을 하나씩 제자리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은 시민위원 310 첫모임에 참석하고 난 후 더 강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퍼즐은 집중해서 순서대로 맞추어 나가야 완성할 수 있는 것처럼 시민위원 310에 집중해서 순서대로 참석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머릿속에 있는 퍼즐들을 잘 맞추기 위해서 일단은 내가 모르는 것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인 특강시리즈인 100년 학교를 열심히 다녀야 할 것이다. 하고 있는 일들 중에서 100년 학교의 우선순위를 앞쪽으로 정해놓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2017년 초 여름. 3·1운동 100, 대한민국 100년 특강.

6월 14일,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저녁에 시청 대회의실에서 진행 된 100년 학교 시리즈 첫 강연의 서해성 총감독님의 화두에 소름이 돋았다.

친일이 청산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이 청산되었다.’

이렇게 관점을 바꾸어서 화두를 던지니 여러 가지 질문과 의문에 대한 답들이 동시에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독립군가의 실종에 대한 의문과 이인직의“혈의 누”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도 해결되는 것 같았다. 이인직과 이완용의 관계, 손병희 선생께서 태화관을 선택하게 된 이유와 통합임시정부가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들, 이러한 각각의 이야기들과 의미들이 각각의 조각으로 떨어져 있던 퍼즐들을 3·1운동 100년 기념사업 속에서 일상화 역사와 문화의 틀 속에서 각각의 자리를 잘 찾아가는 완성된 퍼즐로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내가 완성하려고 하는 퍼즐이 흔들리지 않고 어설프지 않게 잘 자리잡기 위한 첫 걸음으로서의 서해성 감독님의 열정과 열강으로 진행 된 첫 특강은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시간이었다. 역사는 사건의 현실과 기억의 현실사이에 존재한다고 하시면서 기억도 계속 밥을 주어야 한다고 하신 서감독님의 표현에 적극 공감하면서 내 기억에 열심히 밥을 주기로 하였다. 내 지식과 내 기억은 서해성 감독님의 첫 특강을 듣고 나서 더 많은 공부를 할 준비를 하였다. 다음 만남인 6월 26일의 백범일지 낭독시간이 너무나 기다려지면서 백범일지를 혼자서 소리내어 읽어 내려간다. 아주 천천히, 또박또박 소리내어 읽다가 백범 선생 묘역에서 또 다른 역사를 만날 것이다.

2017년에 내가 한 일 중에서 시민위원 310 인이 되었음이 가장 의미있고 반갑고 감사한 일이 될 것 같다. 다음 만남이 기다려지는 모임은 이미 축복받은 모임이라는 생각이 들고 난 그 축복받은 모임에 중독되어 있다. 아주 심하게~~~

 



이미르 시민님

사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너무나 거북스러워 한다. 도저히 그 이야기를 들으면 생기는 분노와 울분, 우울감을 어디에도 풀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비극적 사건들은 모두 과거 해방으로부터 잘못 끼워진 하나의 단추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자탄이 불발이 되고, 일본이 항복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해서 8월 18일 국내진공작전이 수행이 되고 대한민국이 자력으로 국토를 수복하고, 미군이 일본 본토에서 몰락작전을 수행 완료되어 세계 2차 세계대전이 종료가 되었다면.

물론 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우리 앞에 산적한 문제 현안들을 해결해야 한다. 그 시발점이 바로 잘못 끼워진 단추를 다시 정상적으로 돌리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미처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역사 앞에서 오히려 청산을 당해버린 독립운동가들의 비극적인 역사에서부터 비롯된다고 서해성 총감독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아니, 말이라고 하기 보다는 온몸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때로는 자신이 알고있는 사실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생각을 어떠한 필터도 없이 과감하게 토해내는 그의 모습에서 경이롭기까지 함을 느꼈다.

그의 해박한 지식 앞에서 내가 미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한 분노와 내가 알고있었던 사실들을 반추하며 다시금 입술을 깨물게 되었다. 대동단결선언 속에서 주장한 융희황제의 선양은 일본에 대한 선양이 아닌 바로 당시 조선인들에게 로의 선양이라는 것. 이를 통해 제국에서 공화국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너무나도 명쾌한 논리속에서 선인들의 지적능력에 대해 경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길었던 그 시절의 기미독립혁명은 전 국민의 1할 이상이 참가한 세계의 유례가 없는 비폭력 혁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의 지식인들은 황제의 서거를 추모함과 동시에 제국의 끝을 선언하였으며, 지식인들의 선언과 함께 독립의 열망을 담은 만세혁명이 들불처럼 한반도에 퍼져 나갔다. 이는 일제의 무단통치의 종말을 고함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시작을 천하에 알리는 불길이었다.

이민족들도 이에 경탄하며 잔학무도한 폭력의 시대를 끝낼 등불로서 조선인들을 기리게 되었다. 묘하게도. 1919년 3월 1일 시작된 불길은 98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꺼지지 않고 더욱 거세게 타오르고 있다. 일제의 폭압에 전국적으로 번진 불꽃은 1960년 4월 부패한 권력에 맞서 뜨겁게 타올랐으며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1980년 광주에서 유신시대의 종말을 불러왔으며, 다시금 민주주의를 짓밟는 군화에 저항했다. 1986년 6월의 불길은 군사정권에 사형을 내렸으며 2016년 겨울을 녹이며 또다시 부패한 권력을 집어삼킨 거대한 하나의 촛불이 되었다.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일반 시민들의 마음속에는 98년전 종로에서, 애오개시장에서, 전국 각지에서 흔들었던 태극기가 있다. 이 태극기기가 한국인의 정신적인 자산이자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물줄기로 대대손손 흘러 넘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시작에서 기미독립혁명의 100년째를 준비하는 시민위원 310명 모두가 하나하나 각각의 파도가 되어 격랑의 시기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정신적인 큰 기둥이 되기를 기원한다.

 



이은주 시민님

먼저 3ᆞ1운동100년 대한민국100년 행사에 시민위원310으로 참여할 수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방문과외 교사 직업을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저녁시간에 참여해야 한다는것이 좀 부담스러워서 잠시 갈등을 느꼈지만 제 선택에 책임을 다하고 싶었고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을 알고 싶어서 참석을 결정했었습니다. 혹시 괜히 수업까지 빼고 참석하는건 아닐까?하는 걱정스러움을 가지고 말이지요.

하지만 2시간의 강연이 끝나고 나서의 솔직한 저의 후기는 꽤나 흐뭇하고 만족스러웠습니다. 지난해 초부터 시작한 문화유산교육전문가로서의 역할과 사단법인 우리역사 바로알기 1급강사로 각 학교에서 나라사랑교육을 하고있는 제게 또 하나의 자긍심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저도 나라사랑교육을 할때 학생들에게 국경일ᆞ기념일 노래와 독립군가 ᆞ광복군가를 소개해 주기도 하는데도 불구하고 제자신도 시대별 애국가는 강연을 통해 처음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동학혁명부터 3ᆞ1운동까지 년도별로 설명해 주셨던 3ᆞ1운동의 뿌리와 태화관에 관한 사진자료와 부연설명들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서해성감독님의 우스개처럼 말씀하시던 ‘5년 주기설’ 또한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강연내내 거의 맨뒷자석에 앉아 있었지만 길다면 긴 2시간의 시간동안임에도 모두 다 전달해주지 못할것 같은 아쉬움에 강연내내 전전긍긍하시던 서감독님의 열정이 멀리있는 제게 온전히 전해져왔습니다. 그래서 또한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현장에서 수업을 해야하는 저에게 다시금 확실한 사명감과 자긍심도 갖게되는 유익한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3ᆞ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 행사를 위한 시민위원310으로서의 책임감으로 마음이 조금은 무거워지기도 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저의 고민들도 계속되는 강연과 행사에 참여하면서 해결되어 가리라 믿어봅니다. 왜냐하면 3ᆞ1운동은 ‘시간의 건국’ ‘공간의 건국’ ‘인간의 건국’ 이라고 하셨던 서감독님의 말씀이 제 가슴에 쿵하고 박혀버렸거던요.

역사는 ‘지금 그순간’ 그리고 ‘어제로서의 오늘’ ‘내일로서의 오늘’ 이라는 강연 말씀도, 더불어 “역사에 밥을 주자” 라고 하시던 말씀도 제가 앞으로 더 열심히 걸어가야할 문화유산해설사와 나라사랑교육 외부강사 수업을 하는 내내 깊이 새겨질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2시간 동안 열정을 다하여 강연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시민위원310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유익한 강연과 활동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하는 시민위원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