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6월 26일
해방된 조국에서 백범 김구 선생은 민족통일과 친일청산의 꿈을 못 이루신 채 안두희가 쏜 흉탄에 돌아가셨습니다.
2017년 6월 26일
효창공원 내에 자리한 선생의 묘역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선생을 추모하고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의 시민위원분들도 선생께 참배하고 함께 소리내어 백범일지를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선생에게 향불을 올리고 묵념을 드렸습니다.
이날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참석해주신 조광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5살 무렵 갈월동에서 본 김구 선생의 장례식을 회상하셨습니다.
너무 어려서 김구 선생이 어떤 분인지, 사람들이 왜 저렇게 울며 행렬을 따라가는지 몰랐다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알게 되었다는 조광 위원장.
김구 선생의 증손자인 김용만 단장은 어릴 적 잘못을 하면 유독 더 많이 혼났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어린 증손자에게 할아버지의 무게는 때론 무겁기도 했나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엿한 사회 초년생으로 그리고 시민위원310의 단장으로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걷고 있습니다.
새벽 굼벵이는 살고자 흔적 없이 가버리나
저녁 모기는 죽기를 무릅쓰고 소리치며 달려든다.
시민들은 각자의 목소리로 백범일지를 낭독하였습니다. 묵독이 아닌 애써 소리를 내어 선생을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함이었습니다.
3·1운동 서울시기념사업 서해성 총감독은 백범일지의 문학적 가치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사의 큰 어른이 썼기에 우리는 역사적 의미만을 생각하지만 사실 백범일지는 문학적으로 아주 재미있고 잘 써진 책이라고 하네요.
시민들로부터도 생각보다 백범일지가 읽기 쉽고 흥미진진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먹구름이 가득했지만 다행히 행사가 끝날때까지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 단체사진을 찍고 나서야 신발을 다 적실 만큼 장대비가 쏟아졌고 그럼에도 몇몇 시민분들은 효창공원 내의 삼의사묘, 임정묘역까지 발걸음을 옮겨 참배를 드렸습니다.
평일 낮시간, 참석이 쉽지 않음에도 와주신 시민분들께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소리높여 읽었던 백범 선생의 글이 분명 선생께 가 닿았을 거라 생각합니다.